‘보증 선 罪’ 지난달 보증파산 487명… 6월의 8.4배

  • 입력 2003년 8월 24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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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을 섰다가 전 재산을 잃고 파산하는 ‘보증파산자’가 급증하고 있다. 신용불량이나 사업 실패 등이 낳은 개인파산의 경우 그 책임은 궁극적으로 본인에게 있다. 그러나 보증파산자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산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또 그 주요 원인이 경기침체와 신용카드사들의 무분별한 카드대출인 것으로 드러나 제도 개선 없이는 보증파산자들이 더욱 양산될 전망이다.》

개인워크아웃 신청을 받는 정부기관인 신용회복지원위원회에 따르면 7월 한 달 동안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한 5299명 중 보증파산자가 487명을 차지했다. 6월의 56명에 비해 8.4배나 증가한 것이며 올해 상반기 전체 보증파산자 157명에 비해서도 3배 이상 많은 수치.

특히 대부분의 보증파산자들은 보증제도에 대한 기본상식도 없이 보증을 섰다가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준비생인 최모씨(30)는 지난해 친구의 간곡한 부탁으로 신용카드대출 2000만원에 대한 연대보증을 섰다. 당시 친구가 내민 서류에는 ‘연대보증’ 난에 사인을 하도록 돼 있었다.

최씨가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친구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너 혼자가 아니라 보증을 선 몇몇이 연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최씨는 ‘최악의 경우에도 내가 물어야 할 돈은 얼마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에 사인을 했다는 것. 그러나 연대보증이란 채무자의 책임을 보증인이 전적으로 연대해 책임지겠다는 의미.

결국 석달 전 친구가 빚더미를 이기지 못해 잠적하자 최씨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전북 정읍시에 사는 김모씨(26)는 매달 정부에서 받는 생계보조비 37만원으로 살아가는 지체장애 2급 장애인.

지난해 친구의 보증을 서면서 “나 같은 생활보호 영세민이 보증을 설 자격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카드사 관계자는 “신용만 깨끗하면 누구든 보증을 설 수 있으니 걱정말라”고 했다.

그런데 최근 김씨의 친구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김씨는 1000만원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김씨는 “한달 수입이 37만원인 장애인이 무슨 수로 돈을 갚느냐”고 카드사에 호소했지만 먹힐 리가 없었다.

김씨는 “돈을 못 갚아 정부에서 보조받는 생계보조비마저 압류된다면 정말 굶어 죽을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법무법인 세종의 서태용 변호사는 “카드발급제도를 개선하고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후진적 대출관행인 인(人)보증제도가 사라지지 않으면 이 같은 현상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연대보증이란…▼

X-보증을 선 여러사람이 연대해서 책임진다

O-보증인이 채무자의 책임을 연대해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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