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월드]‘자동차 3대를 가진 사나이’ 허장혁

  • 입력 2003년 7월 7일 16시 24분


코멘트
허장혁씨가 아파트 근처 공터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티뷰론을 세워놓고 웃고 있다. 그는 활짝 웃으라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처음에는 깨진 치아가 보인다며 주저했다. 치료에 들어가는 40만원이 아까워 아직 치료를 못했다고 했다.김미옥기자 salt@donga.com
허장혁씨가 아파트 근처 공터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티뷰론을 세워놓고 웃고 있다. 그는 활짝 웃으라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처음에는 깨진 치아가 보인다며 주저했다. 치료에 들어가는 40만원이 아까워 아직 치료를 못했다고 했다.김미옥기자 salt@donga.com
허장혁씨(34).

독일계 기업인 지멘스코리아의 과장으로 있다. 그는 자동차가 세 대다. 티뷰론, 싼타페, 클릭. 그는 아직 미혼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그는 이 차들의 유일한 운전자이다. 틈만 나면 자동차 3대를 샅샅이 분해한 뒤 부품을 ‘닦고, 조이고, 기름칠’을 하는 게 취미다. 자동차 부품을 손으로 만질 때 그는 가장 즐겁다고 한다. ‘정비 견적’이 커지면 차 한대를 손보는 데에만 하루 종일 걸리기도 한다.

얼마 전에 부모님이 “이웃 보기가 부끄럽다”며 “집 앞에서는 자동차를 만지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그래서 그는 최근에는 분당의 한 할인점 지하주차장을 단골 작업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차료가 공짜인데다가 지하이기 때문에 비와 햇볕을 피할 수도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근 납치사건이 잇따르면서 지하 주차장에서 작업 도중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백화점 경비로부터 ‘납치범’으로 몰려 불심검문을 받기도 했다. 그는 최소 일주일에 두 번은 세차를 한다. 3대를 제대로 세차하려면 최소한 두 시간이 걸린다. ‘멀쩡한’ 용모에, 직장생활도 잘하고 있는 그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군대 갔다 오면 새 차를 사주마.”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1990년 아버지의 이 한마디 약속이었다. 폐차 직전의 낡은 차를 몰았던 그는 “차를 사 달라”고 줄기차게 졸랐다. 아버지는 결국 그의 성화에 못 이겨 이 같은 약속을 했다. 그러자 그는 바로 ‘자동차를 얻기 위해’ 군 입대를 결심했다. 그의 부모는 입대를 앞둔 아들에게 당부를 했다.

“군대에서 절대 운전병을 해서는 안 된다.”

논산훈련소에 입대하는 순간 부모의 당부는 물거품이 됐다. 운전면허증에 실전경험까지 갖췄던 그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전병으로 차출됐다. 타고난 그의 운전 실력이 알려지면서 그를 운전병으로 스카웃하려고 육군본부 보안사 정보사 등 이른바 ‘힘 있는’ 부대가 경합을 벌였다. 결국 가장 힘이 센 국방부가 그를 데려 갔다. 그는 운전에 관해 배워야 할 모든 것을 군대에서 배웠다. 웬만한 정비는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평소 ‘지문도 남겨놓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차를 관리하는 습관도 군대 시절 습관이 굳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를 정말로 사랑하게 됐다.

군대 제대 후 아버지는 약속을 지켰다. 난생 처음으로 새 차를 몰았다. 엘란트라. 그러나 이후 98년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오너 운전자였다. 변화는 98년 말에 왔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직장으로 옮기면서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자 그는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았다. 그 때 마침 티뷰론 중고차가 매물로 나왔다. 외환위기 직후인 만큼 가격도 700만원 대로 괜찮았다. 차량 튜닝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추가되는 튜닝비용을 고려해 저렴한 중고차를 물색하던 차였다. 티뷰론에 그는 락포트 앰프, 다인오디오 스피커, 파이오니아 오디오헤드를 설치했다. 주행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지면에 닿는 면적이 넓은 인치업(inch-up)타이어로 교체했고, 이를 위해 휠을 교체했다. 차량 업그레이드에 들어간 총 비용은 2000만원. 차량 구입가격의 3배였다. 모든 비용은 그가 부담했다. 부모는 “쯧쯧쯧…” 혀를 차다가 결국 아들을 이해하기로 했다.

3시간이 걸리는 출퇴근 시간이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 됐다. 조지 벤슨의 재즈를 들으면서 드라이브를 하는 것이 좋아 일부로 ‘돌고 도는’ 길을 택해 퇴근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고,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가면서 티뷰론이 가끔 문제가 됐다. 사람들이 자꾸 그를 ‘애’ 취급하는 것. 그래서 그는 지난해 말 업무용으로 싼타페를 추가로 구입했다. 이제 주중에는 싼타페, 주말에는 티뷰론을 운전한다. 티뷰론에 있던 A/V를 모두 싼타페로 옮기는 ‘옵션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그는 일년 전부터 ‘티뷰론 오너스 클럽’(www.hyundai-coupe.co.kr) 회장직을 맡고 있다. 올 초에는 현대자동차가 클릭 운전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레이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클릭 중고차를 구입했다. 클릭에는 안전성을 보강하기 위한 업그레이드에 주력했다.

그는 차량 업그레이드는 이제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이제 남은 것은 운전하는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즘 시간이 생기면 주말에 용인스피드웨이에서 운전실력을 향상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참고로 그는 15년 무사고 운전기록을 갖고 있다). 또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배기가스 배출 및 소음규제 등 건강한 모터스포츠 문화의 정착에도 노력하고 있다. 그에게 ‘왜 이렇게 자동차에 많은 돈과 노력과 정성을 쏟느냐’고 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즐겁기 때문입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