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이헌진/전산망에 걸린 얌체 외국인

  • 입력 2003년 5월 11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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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부근 패밀리레스토랑 3곳에서 ‘외국인 소동’ 이 있었습니다.

가장 바쁜 토요일 오후 7시. 이곳의 패밀리레스토랑 토니로마스 매장에 한 외국인이 나타나 매니저를 찾았습니다. 그는 “지난번에 음식을 여기서 먹고 난 뒤 식중독으로 고생했다. 보상을 하라”고 다짜고짜 따지고 들었습니다. 앞뒤도 맞지 않는 주장을 펴며 거의 강짜를 놓은 이 외국인에게 “신분증이라도 보여주면 보상을 하겠다”고 했더니 신분증도 없다며 떼를 쓰더랍니다.

그리고는 “내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는데 당신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침을 뱉고 욕을 하면서 한바탕 소동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같은 시간에 바로 근처에 있는 패밀리레스토랑 마르쉐와 티지아이(TGI)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항의하는 외국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머리가 짧았고 “나는 군인이며, 장교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주장까지 동일했습니다.

요즘 한국 패밀리레스토랑들은 서비스 경쟁이 불붙어 웬만하면 고객의 입장을 반영합니다. 물론 이 경우 보상이라야 식사와 음료수 등을 몇 번 먹을 수 있는 무료 쿠폰이나 경품 등을 받는 정도지만 누구라도 큰소리로 “서비스 엉망” 운운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보상하는 일도 적지 않은 게 업계 현실이죠. 이들 외국인들은 이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몰랐던 게 2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패밀리레스토랑의 신속한 정보공유체계를 몰랐죠. 같은 레스토랑 점포끼리는 물론 동종(同種)업계끼리 수시로 정보공유를 하는데 이들이 ‘딱’ 걸린 셈이죠.

점포 3곳에 나타났던 외국인 3명(백인 2명, 흑인 1명)의 인상착의는 패밀리레스토랑의 내부 전산망 등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습니다. 물론 이들에 대한 경계령도 내려졌습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장소를 잘못 골랐죠. 강남역 주변은 외국어 학원이 몰려있고 외국인 유동인구가 많기 때문에 패밀리레스토랑의 점장 가운데 외국 대학 출신자가 많습니다. 영어로 억지를 쓰다보면 보상을 받을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죠.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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