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빠질게 없는 기업을 잡아라"

  • 입력 2002년 12월 22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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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가치투자자 워런 버핏은 ‘최악의 상태’에 놓인 기업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적이 나빠 주가가 크게 떨어진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

그러나 그가 고른 종목은 단순히 ‘나빠 보이는’ 기업은 아니었다. 현재 상황이 최악이어서 앞으로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는 기업이 그가 좋아하는 투자 대상이었다.

▽SK가스〓올해 1년 내내 주가가 오른 몇 안 되는 기업이다. 올해 초 SK가스 실적을 훑어본 투자자라면 지금의 주가 상승이 다소 의외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이 회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익률이 너무 낮아 투자할 마음이 선뜻 나지 않는 기업이었다.

SK가스는 액화석유가스(LPG)를 해외에서 수입해 국내에 파는 회사. 실적이 환율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회사의 영업실력은 영업이익률이 아니라 환차손을 감안한 경상이익률로 짐작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SK가스는 1999, 2000, 2001년 모두 경상이익률이 1%대에 머물렀다. 100원어치를 팔면서 2원도 채 못 남겼다는 뜻. 매출은 1조8000억원이나 됐지만 경상이익은 고작 337억원이었다.

그런데 올해 LPG 가격이 자유화되면서 경상이익률이 3%를 넘어섰다. 이익률은 단 1.3%포인트가량 좋아졌지만 매출이 워낙 큰 덕에 실제 이익규모는 큰 폭으로 좋아졌다. 올해 3·4분기(7∼9월)까지 경상이익이 376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이익 337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더 나빠질 것이 없는 회사들〓오랫동안 시설투자 등을 하느라 이익률이 높지 않았던 오뚜기도 더 나빠질 것이 없는 기업에 속한다.

오뚜기는 최근 몇년 동안 라면과 참치시장을 적극 공략하면서 끊임없는 투자를 해왔다. 케첩, 마요네즈, 카레 등 이미 시장을 장악한 분야에만 안주하지 않고 계속 사업을 확장해 온 것.

쓰는 돈이 워낙 많아 최근 몇년 동안 이익률은 낮았지만 이제 투자는 거의 끝났다. 최악의 상황을 지나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투자의 열매를 거둬들이기 시작한 것. 지난해 1.6%대로 바닥을 기던 영업이익률이 올해 3.8%로 껑충 뛴 것도 이 덕분.

카시트를 만드는 회사로 영업능력을 인정받고도 영업이익률이 2%대에 머무는 대원산업도 ‘더 나빠질 것이 없는 회사’이다. 대원산업의 올해 3·4분기 누적 매출은 3000억원에 육박한다. 하청업체로서는 대단히 높은 매출. 이 회사가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100원어치를 팔아 겨우 2원 정도 남기는 지금의 마진이 더 낮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분석.

가치P&C 박정구 사장은 “현명한 가치투자자는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기업 중에서 보석을 골라낸다”라며 “실적이 나쁜 기업이라고 무조건 무시하는 것보다는 왜 실적이 나쁜지, 앞으로 좋아질 가능성이 있는지를 꼼꼼히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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