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경제포럼]“부실카드사 이번기회에 퇴출시켜야”

  • 입력 2002년 12월 1일 17시 37분


왼쪽부터 최공필 선임연구위원, 김석동 국장, 안재욱 교수.
왼쪽부터 최공필 선임연구위원, 김석동 국장, 안재욱 교수.

《지난 2년간 급팽창한 가계대출의 거품이 꺼지면 가계부실은 물론 금융회사 부실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01년 불경기 당시에는 가계대출이 민간소비를 늘려 경기를 살리는 불씨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은행 카드사 등이 무분별하게 대출경쟁을 벌이면서 위험수위를 넘어선 듯하다.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총체적 부실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 이에 따라 정부는 가계대출을 규제하는 각종 대책을 내놓았고 금융권도 여기에 보조를 맞춰 가계대출을 줄여나가고 있다. 그러나 정부 규제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다. 이번 달 ‘동아경제포럼’은 가계대출 문제를 집중적으로 진단했다. 좌담회는 지난달 29일 오전 본사 회의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사회〓날씨도 추운데 아침 일찍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고는 있지만 그동안의 증가 속도와 규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가계대출 증가가 가계 및 금융 부문 부실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고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석동 국장〓가계대출은 절대규모보다 증가속도가 문제입니다. 은행권만 보면 올 들어 60조원이나 늘어 10월말 현재 220조원 가까이 됩니다. 기업의 자금수요가 없다 보니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둘러싸고 과당경쟁을 벌인 결과입니다. 이는 금융기업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고 가계 입장에서 보면 신용불량자가 양산돼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안재욱 교수〓국내 은행의 연체율은 아직 다른 나라에 비해 낮습니다(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10월말 현재 1.6%로 미국의 2.7%보다 낮음). 과연 걱정할 만한 수준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은행 가계대출은 대부분 부동산 담보대출입니다. 신용위기로 이어지려면 부동산값이 폭락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총유동성(M3)은 한국은행의 관찰 범위(8∼10%)에서 벗어나 거의 12%대에 달합니다. 오히려 인플레를 우려할 상황이라고 봅니다.

▽최공필 선임연구위원〓가계대출 증가속도는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금이 특정 부문에 집중적으로 쏠리면 부실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가계부문 쪽으로 돈이 너무 빨리 흐르고 있습니다. 부실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를 차단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겠지요.

▽김〓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이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문 부채비율은 2000년까지 50% 미만이었는데 지금 75%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당장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 해도 감독당국으로선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제가 걱정하는 것은 자금흐름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금융부문이 과도하게 조정되는 것입니다. 한국은 선진국과 달리 조정 과정에서 금융기관이 대단히 예민한 행태를 보입니다. 그래서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계층의 부실을 더욱 부추겨 급속하게 신용위기에 빠지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사회〓11월 들어 주택담보대출은 줄어드는 반면 신용카드 채권은 계속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카드사의 연체율은 은행보다 훨씬 높은데 위기로 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시는지요.

▽김〓은행계 카드사들의 연체율은 작년 말 7.3%에서 10월말 11.42%까지 뛰었습니다. 전업 카드사들의 연체율도 작년 말 5.8%에서 10.4%로 높아졌지요. 그동안은 가계대출이 크게 늘면서 부실 요인이 감춰져 있었는데 카드부문의 대출이 줄면 연체율이 급격하게 높아질 수 있습니다.

▽안〓신용카드사와 은행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정부가 은행에 대해 규제를 가하는 것은 보호해야 할 예금자가 있고, 한 은행의 부실이 다른 은행으로 전염되는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용카드사는 보호해야 할 예금자가 없고 다른 회사에 전염효과도 없습니다. 신용카드사가 쓰러진다 해도 정부가 개입할 성격은 아니라고 봅니다.

▽김〓기본적으로 안 교수님의 지적이 맞습니다. 하지만 은행계 카드사의 부실화는 은행 경영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전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과 관련되는 문제이지요. 올해 초부터 정부가 내놓은 가계대출 관련 대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대부분 시장지향적 대책들입니다.

▽최〓시장질서를 해칠 정도가 되면 내버려둘 수 없겠지요. 사실 신용카드 업계 스스로 정부의 규제를 불러들인 측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정부 부담으로 전가하려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대해서는 규제를 해야 합니다.

▽안〓97년 말 외환위기의 주 요인이 관치금융 때문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 번의 정부 개입은 작은 문제일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이 쌓여서 관치금융이 되는 것입니다.

▽사회〓안 교수님이 지적하셨고 김 국장님께서도 답변을 하셨으니까 최근 정부 대책에 대해 더 얘기해 보도록 하지요. 가계대출을 줄여야 하지만 정부의 직접규제보다는 금융권의 자율규제를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정부는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가계의 부담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신용카드사 9개 가운데 5개가 은행계 카드사입니다. 전체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안〓사실 지금 신용카드사가 너무 많습니다. 문제는 정부 규제는 신용카드사의 퇴출을 막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각종 규제를 하니까 신용카드사들은 퇴출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행동하고 이것이 모럴 해저드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김〓정부 대책의 주된 내용은 대손충당금이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등 금융기관 건전성 대책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입니다. 감독당국 입장에서는 금융기관의 실제 대손충당금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고 최소한 쌓아야 할 수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과거 관치금융 시절처럼 총량 규제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안 교수님이 좋은 지적을 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손충당금 정책은 문제가 있습니다. 위험관리를 잘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차별이 안 됩니다. 잘하는 곳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충당금의 차등화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카드사가 너무 많다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번 카드종합대책 중 하나가 적기(適期)시정조치 강화입니다. 경영 상황에 따라 권고도 하고 경영개선 명령도 해서 회복이 안 되는 카드사는 퇴출시키자는 것이지요.

▽사회〓다른 얘기를 해보지요. 최근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은행들이 손쉬운 가계대출에만 의존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행들은 자산운용에 있어서 어떤 대안을 가질 수 있을까요.

▽김〓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입니다. 은행의 자산운용은 가계대출, 기업대출, 유가증권 투자 등 3개 분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가계대출은 최근 몇 년 사이에 3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가계대출을 억제하면 기업대출과 유가증권 투자를 늘릴 수 있겠지요.

▽최〓은행이 돈을 굴릴 데가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은 자금운용이 화두이지 돈을 어디서 끌어오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글로벌 기업은 해외에서 돈을 끌어씁니다.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상황이 달라졌지요. 이런 세계화 추세에 맞춰 금융기업도 지금까지의 방법에서 완전히 탈피해야 합니다. 현재는 가계대출로 나타났지만 본질적으로는 자금운용의 문제입니다.

▽안〓금감위원장이 은행의 자산운용 문제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그건 은행 경영진이 선택해야지 금감위원장이 언급할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김〓금감위원장은 금융감독을 총괄하는 자리입니다. 가계대출이 급증하면 금융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이 위기에 빠질 수 있으므로 이런 점을 고려해달라는 당부로 이해해 주십시오.

▽사회〓약간 다른 의견입니다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야 하는 정책당국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보수적으로 정책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가계대출을 갑작스럽게 위축시키는 바람에 실질금리가 오르는가 하면 심지어 3군데에서 카드대출을 받은 고객은 퇴출시키겠다는 ‘과격한’ 은행까지 나타났습니다. 가계대출 축소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하더라도 선의의 고객까지 피해를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안〓은행들이 너무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의의 피해자도 나오고요.

▽최〓일부 은행은 지나칩니다.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조정하는 것을 보면 부실이 큰 계층의 부실화를 더욱 부추깁니다.

▽사회〓사실 가계대출 급증과 부동산 버블의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저금리 정책인데요. 정부가 경기를 고려해 금리를 올리지 못하니까 ‘외곽 때리기’를 통해 다른 방법으로 가계대출을 줄이려다가 관치금융 논란까지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근본적인 수단인 금리 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최〓글로벌 환경에서는 독자적으로 통화정책을 쓸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습니다. 세계적 추세에서 벗어나 금리를 조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금리로 가계대출 문제를 조정하면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줍니다. 쉽지만 쓰기 어려운 수단입니다.

▽안〓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의 목표를 분명히 세워야 합니다. 한은법에 따르면 통화정책 목표는 물가안정입니다. 그런데 금리정책을 자꾸 경기조절용으로 쓰려고 하고 있어요.

▽김〓지금 같은 개방경제에서 금리와 환율은 자산가격에 변화를 줍니다. 금리 변동폭이 아무리 작더라도 자산가치에 주는 충격은 매우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정리〓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참석자◈

▼최공필 gpchoi@kif.re.kr▼

△1958년생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미국 버지니아대 경제학박사 △중앙대 강사 △대우경제연구소 특수연구실장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 자문위원 △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석동 sdkim@fsc.go.kr▼

△1953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행시23회 △재정경제원 외화자금과장 △재정경제부 경제분석과장, 증권과장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과장 △현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 1국장

▼안재욱 jwan@khu.ac.kr▼

△1954년생 △경희대 경제학과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경제학박사 △한국금융학회 종신회원 △한국경제학회 종신회원 △현 경희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겸 교양·연계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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