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전세금 약세로 매매가 동반하락

  • 입력 2002년 11월 20일 17시 31분



전세금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매매가를 끌어내리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새 아파트가 완공됐어도 입주를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가 많아 급매물까지 나온다.

통상 전세금은 매매가의 선행지수 역할을 한다. 전세금이 오르면 매매가가 뒤늦게 오르는 식이다.

이와 관련해 건설회사들은 지금이 비수기이기 때문으로 풀이하지만 일선 중개업소에서는 지역별 수급 불균형이 현실화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전세금과 매매가가 동반 약세를 보이는 현상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세 적체, 매매 급매물로 전환〓8월 말 완공된 강북구 미아동 ‘벽산라이브파크’(2075가구)는 현재 76%가량이 입주했다. 아직 입주가 안 된 가구의 절반가량은 인근 중개업소에 전세 매물로 나와 있다. 하지만 24평형만 가끔 찾는 이가 있을 뿐 30평형 이상은 수요가 거의 없다.

미아동 SK부동산 권기봉 사장은 “전세 매물이 쌓이다 보니 보증금 시세가 보름 전보다 1000만원가량 빠졌다”며 “전세 수요가 없어 아예 팔려고 내놓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또 “전세 매물에서 매매로 전환된 물건이 많다 보니 최근에는 시세보다 400만∼500만원 싼 급매물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동구 행당동 ‘한신플러스타운’(1569가구)도 마찬가지. 입주가 시작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10가구 중 3가구는 빈집으로 남아 있다. 이 아파트 역시 전세 매물이 매매로 전환되고 있다.

인근 로얄공인 이정익 사장은 “첫 입주 때보다 전세금이 많게는 5000만원까지 내렸다”며 “32평형이 2억1000만원을 호가했지만 지금은 1억6000만원에도 나와 있다”고 말했다. 매매가도 200만원가량 낮춰 나온다.

지난달 말 완공된 강서구 화곡동 ‘대우그랜드월드’(2176가구)는 약 500가구 정도가 전세 매물로 나와 있다.

대우건설이 집계한 공식 입주율은 20일 현재 46.9%. 대우건설은 이사 기간이 다음 달 6일까지여서 그때까지는 입주가 완전히 될 것이라는 관측이지만 현장 중개업소의 설명은 다르다. 화곡동 지구촌공인 송은숙 사장은 “전세 수요자들이 가격이 더 떨어질 때를 기다려 입질을 하지 않는 데다 내년 봄까지 기다리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귀띔했다.

전세금이 떨어지자 매매가도 최근 큰 폭으로 하락했다. 61평형 매매가가 4억8000만∼5억5000만원으로 한 달 전보다 3000만원가량 빠졌다.

▽‘전세 끼고 집 사자’ 낭패〓전세금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두려고 했던 이들이 많았기 때문.

99년 이후 집값이 급등하자 ‘일단 분양부터 받아두자’는 식으로 아파트를 계약했던 이들이 최근 들어 전세 매물을 대거 내놓고 있는 것이다.

동작구 상도동 부동산월드공인 성은희 사장은 “상도동 ‘삼성래미안’도 11월 말이 잔금을 내는 날인데 전세가 안 나가 속을 태우는 사람들이 많다”며 “돈이 급한 이들이 전세물건을 싸게 내놓다가 나중에는 아예 매매로 돌리고 있어 값이 약세”라고 설명했다.

다가구 다세대주택이 늘어난 것도 가격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서울에서 공급된 다가구 다세대주택은 98년 4000가구에서 2000년 2만4000가구, 2001년에는 8만6000가구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 같은 경향은 서울 강북지역에서 특히 심하게 나타난다. 반면 강남지역은 아직까지 전세 수급이 원활한 편이다. 대규모 단지가 없는 데다 공급 자체가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8월 완공된 송파구 문정동 대우3차아파트(150가구)는 겨우 2가구만 비어 있을 뿐이다.

▽겨울 이사철이 관건〓부동산업계에서는 12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겨울 이사철이 내년 전세금과 집값을 결정하는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작년처럼 이사철을 기점으로 가격 상승 랠리가 재현된다면 지금 나와 있는 매물들이 곧 소진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장기 미계약 매물로 남게 된다는 것.

성동구 행당동 로얄공인 이정익 사장은 “지금은 매물이 쌓여 있지만 통상 겨울방학 이사철이 시작되면 게눈 감추듯 물건이 빠져나간다”며 “전세금이 장기적으로 하락한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부동산뱅크 김용진 편집장은 “외환위기 이후 여유자금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집 장만을 마쳤다”며 “신규 수요는 소진된 반면 공급은 크게 느는 추세여서 가격 약세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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