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철의 경영과 인생]①기업의 수명

  • 입력 2002년 9월 29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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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부터 매주 월요일자 CEO면에 ‘윤석철 교수의 경영과 인생’을 연재한다. 윤석철(윤석철·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동안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비교적 자제해 왔다. 학자로서의 내공을 더 쌓기 위해서다. 이번에 ‘동아경제’ 지면을 통해 최고경영자(CEO)나 CEO를 꿈꾸는 이들이 윤 교수와 손을 잡고 경영과 인생을 폭넓게 조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인간은 일을 해야 살 수 있는 존재

경영학은 일을 잘하기 위한 학문이다. 일을 잘못하면 자원만 낭비하고 성과는 미흡할 수 있다. 그래서 일을 잘하기 위한 학문이 필요하다. 음의 진동수에 따라 피아노 건반을 배열하듯 순수학문에서부터 응용도가 높아지는 순서로 학문을 배열한다면 경영학은 응용학의 극단에 위치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산업혁명 이후 기업이 발달하면서 생산, 판매, 인사, 재무 등 분야별로 필요해진 부분해법(partial solutions)들이 모여서 경영학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풀어야 할 문제의 규모와 복잡성이 증대하면 부분해법만 가진 경영자는 한계에 봉착한다. 21세기 경영자는 한정된 자기분야를 초월해서 관련영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지적(知的) 시야를 필요로 한다. 그는 인간의 필요, 아픔, 정서를 인식할 수 있는 감수성으로 소비자의 수요를 예측해야 하며, 예측한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과학과 기술도 이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경영자는 자기를 따르는 수동적 다수의 수용(受容)과 존경을 받아야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경영자가 이렇게 다양한 조건을 갖추려면 인문, 사회, 자연 등 다양한 학문계열로부터 교양과 지식을 습득해야 하며 철저한 자기비판을 거친 인생관과 세계관으로 정신무장을 해야 한다. 필자는 부분해법의 조각모음 상태에 있는 경영학을 하나의 진리체계로 만들어내기 위해 30여년 동안 노력해 왔다. 그 결과를 일반 지성인들이 읽을 수 있는 체제로 정리하여 여기에 연재하고자 한다.

#인생과 경영 탐구의 출발점

닥터 지바고, 콰이강의 다리 등 불후의 명작을 많이 남긴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은 말하기를 그가 작품을 만들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영화를 어떤 장면으로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있다고 했다. ‘경영학 이야기’를 한 줄기 흐름으로 연재하는 작업에도 시작의 고민은 있다. 경영학은 인생과 기업에 관한 진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인생은 태어나기만 하면 탄탄대로이고, 기업은 세우기만 하면 돈이 저절로 벌리는 곳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경영학 이야기는 마이동풍이 될 것이다. 어느 종교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기업경영도 인생 못지않은 고해다. 구체적 데이터를 보자. 일본 닛케이비즈니스지가 메이지유신 이후 100여년 동안 일본 100대 기업에 올랐던 회사들의 수명을 연구한 바 있다. 그 결과 이들 기업의 평균수명이 30년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에서도 기술의존형 대기업 2,000개 사를 샘플로 평균수명을 조사한 바 있고, 이 보고서는 이들의 평균수명이 10년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믿기 어려운 단명이지만 산업별 구체적 자료를 보면 실감이 난다. 자동차의 경우 1910년대에 미국에는 200여 자동차제조회사가 있었다. 이 수가 1930년대에는 20개사, 1960년대에는 4개사로 줄었고 지금은 3개사이다. 라디오, TV, 화학산업 등 모든 분야가 무한경쟁 속에서 이렇게 흥망을 겪으니 10년 정도의 평균수명이 나올 만하다. 대기업이 이러하거늘 중소기업은 오죽하랴.

여기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왜 미국 기업의 평균수명은 일본의 3분의 1밖에 안 되나?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자유도(degree of freedom)의 개념을 필요로 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즉 일본보다도 정부의 통제가 훨씬 적은) 나라다. 자동차회사 수가 한때 200개에 이르렀다는 사실도 그것을 말해준다. 정부의 통제가 적어서 산업활동의 자유도가 높아질수록 생존경쟁은 치열해지고 그 결과 기업의 평균수명은 단축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자유도가 매년 높아지고 있다. 그에 따라 생존경쟁은 격화될 것이고 기업의 평균수명은 계속 단축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이 자유사회를 지향하는 이상 생존경쟁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 된다. 다음 글에서는 생존경쟁의 본질을 구명하면서 그 속에 살아갈 지혜를 탐구하자.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yoonsc@plaza.snu.ac.kr

◆약력=윤석철교수는 문과와 이과를 아우르는 4개의 전공을 섭렵한 학자다. 사물과 인간에 대한 관심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증거다. 그는 다양한 지적(知的) 발자취에 걸맞게 ‘개별 문제에 대한 조각 해법’ 상태에 있는 경영학을 하나의 통일된 이론체계로 만들기 위해 몰두해 왔다. 그의 저서인 ‘경영학적 사고의 틀’(81년)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91년) ‘경영학의 진리체계’(2001년) 등 3권의 10년 연작은 그 같은 노력의 소산.

△충남 공주 출생(1940년) △서울대 독어과 입학 후 물리학과로 전공을 바꿔 졸업(서울대 전체 수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박사(전기공학) △〃 박사(경영학) △독일 만하임대 연구교수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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