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민간평가위 보고서 아예 묵살"…경영평가 김일섭위원장

  • 입력 2002년 9월 28일 07시 20분


외환위기 직후인 97년 말에서 98년 초까지 부실 종금사 퇴출 결정 과정에서 경영평가위원장을 맡았던 김일섭(金一燮·56·당시 삼일회계법인 대표) 이화여대 부총장은 “경평위의 판단으로는 대한종금이나 나라종금을 살릴 명분이 없었다”면서 “평가위원들은 정부가 경평위 보고서를 무시하고 결과를 뒤집은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고 말했다.

김 부총장은 27일 이화여대 집무실에서 2시간여 동안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경평위의 평가내용을 처음으로 공개하고 정부 결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경평위는 대한종금에 대해 즉각 폐쇄 권고인 E등급 판정을 했지만 정부가 다른 회계법인을 지정해 재실사한 뒤 영업재개를 승인했다.

“우리한테는 의견을 묻지도 않았다. 경평위는 4개 종금사 폐쇄조치 의견을 냈다. 그러나 정부는 한솔(부산)과 대구종금(대구)은 즉각 문을 닫도록 했지만 전주에 기반을 둔 대한종금과 삼양종금은 결정을 1개월 늦추더니 대한종금은 재실사를 받도록 했다. 그 후 영업재개 조치가 떨어졌다.”

-대한종금은 경평위 평가 후에 유상증자에 성공해서 결과적으로 회생 요건을 갖춘 것 아닌가.

“회사 자구계획을 보면 대한종금에서 돈을 빌려간 기업들이 증자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지 뻔한 것 아니냐. ‘물타기’ 증자를 하겠다는 것이다. 돈을 넣어 형식요건만 갖추겠다는 뜻이다.”

-판정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났는데 그때 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나.

“정부로부터 우리 보고서와 관련해 어떤 질문도 받은 적이 없다. 당시는 정부 요청으로 일을 한 입장이어서 외부에 보고서를 밝힐 수 없었다.”

-지난해 감사원 특감 때 조사 받지 않았나.

“평가위원장인 나를 왜 부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부실종금사 문제는 감사원 특감뿐만 아니라 검찰수사도 했는데 나보고 오라는 얘기가 한번도 없었다.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경평위 보고서가 왜 묵살됐다고 생각하나.

“경평위가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YS 정권 말기였다. 그런데 우리가 2차 보고서를 낸 것은 현 정부 출범 사흘 뒤인 98년 2월 28일이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평가 잣대가 바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 결정에 외압이 작용했다고 보나.

“당시는 정권교체기여서 어수선했다. 새 정부가 마무리를 잘 지었어야 하는데 제대로 안 했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경평위 활동이 정부에 신뢰를 주지 못한 것 아닌가.

“경평위에는 변호사 회계사 교수 등 전문가 10명이 참여했다. 우리 일에 객관성을 부여하려고 매킨지 직원도 고용하고 아서 앤더슨 직원도 뽑았다. 세계은행과는 수시로 의사교환을 했다. 우리의 판단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종금사 경영정상화계획 평가위원 명단
 (활동기간: 97년12월29일~98년2월25일)

평가위원소속(당시)
김일섭(위원장)삼일회계법인
박동수은행감독원
김종수신용관리기금
안경태삼일회계법인
조태현산동회계법인
고영채안진회계법인
이태봉종금협회
정진영김&장 법률사무소
차백인한국금융연구원
서윤석아주대

-금감위는 경평위 결정대로 따랐다고 하는데….

“지금 금감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그 해명은 거짓말이다. 자신들이 한 일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하는 얘기일 것이다.”

-국정조사 특위에서 증인으로 부른다면….

“기꺼이 나가겠다. 전문가들은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정부가 잘못된 결과를 우리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안 된다. 경평위 위원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밝히겠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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