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상광고는 시청자주권 침해"

  • 입력 2002년 9월 17일 18시 33분


가상광고의 한 사례. 축구 중계 방송 장면에서 경기장 주위의 광고판이 시차를 두고 바뀌고 있다. 이는 경기장에 있는 광고판이 아니라 방송사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삽입한 것이다.

가상광고의 한 사례. 축구 중계 방송 장면에서 경기장 주위의 광고판이 시차를 두고 바뀌고 있다. 이는 경기장에 있는 광고판이 아니라 방송사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삽입한 것이다.

《방송위원회(위원장 강대인)가 도입을 추진중인 ‘가상광고(Virtual Advertising)’에 대한 논란이 국정감사에서 확산되고 있다.

현재 가상광고와 관련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학계와 시민단체의 광범위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될 조짐. 6일 규제개혁위원회을 통과한 이 개정안은 현재 법제처 심사중이며 차관 회의와 국무회의 등을 남겨 두고 있다.

그러나 방송위원회(17일)와 문화관광부(16일) 국감에서 민주당 정범구 조배숙 의원과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 등은 “시청자 주권을 침해하는 가상광고 도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상광고는 무엇이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진단한다.》

■가상광고란?

가상광고는 컴퓨터그래픽으로 촬영 현장에 없는 영상을 만들어 프로그램 도중에 끼워 넣는 것이다. 6월 2002 한일월드컵 경기 때 축구장을 비춘 화면에 스코어나 해당 국가의 국기를 그려 넣는 방식으로 광고를 하는 것이다. 개정안에는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 방송 시간의 3% 이내에서 가상광고를 허용하는 조항 등을 담고 있다.

현재 외국 방송에서는 스포츠에서 가상광고가 시행되고 있으나 시청자들의 혼란과 부작용을 막기 위해 엄격한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유럽방송연합(EBU)은 중계 현장의 외관 변형과 시청자 관람시각 방해, 가상 광고의 뉴스 프로그램 삽입 등을 금지하고 있다.

■가상광고의 문제점

국감에서는 방송위의 무리한 가상광고 도입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시청자 주권의 침해와 방송의 상업화를 부추길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은 “방송문화진흥원이 발간한 ‘2001 시청자 조사’에서 시청자의 70%이상이 광고가 많다고 불평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방송위가 가상광고를 강행하는 것은 시청자의 방송복지보다 방송사의 이익만 챙겨주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조배숙 의원은 “방송위가 디지털 방송의 재원 마련을 가상광고 도입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번 월드컵에서만 2900억원이 넘는 막대한 매출을 기록하는 등 가상광고가 없어도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는 방송 광고 시장에서도 87.1%(2001년)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민주당 정범구 의원은 이에 앞선 16일 문화관광부 국감에서 “방송위와 문화관광부가 가상광고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프로그램과 광고를 구분하는 방송법 73조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가상광고 도입은 현재도 많다고 느껴지는 TV 광고 시간을 늘리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계와 시청자 단체에서도 가상광고 도입은 중간광고나 광고총량제로 가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전북대 김승수 교수(신방과)는 “가상광고가 실시되면 현재 프로그램과 광고를 엄격하게 구분해 광고 과다를 억제하는 ‘마지막 빗장’이 사라진다”며 “가상광고는 중간광고제나 광고총량제로 가는 길목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이 빗장이 사라지면 프로그램 중간에 광고를 ‘중간광고’제나 프라임타임대에 집중적으로 광고를 배치해 무분별한 시청률 경쟁을 불러오는 ‘광고총량제’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실제 2000년 문화관광부는 TV 중간광고 도입을 추진했으나 시민단체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한국방송광고공사도 지난해 하반기 방송위와 별도로 ‘방송광고 운영제도에 관한 조사연구’를 실시해 광고총량제 중간광고 가상광고 등에 대한 세부 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방송위의 입장

방송위 강대인 위원장은 국정감사 답변에서 “가상광고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디지털 방송 재원 마련 외에도 새로운 광고 기술을 도입한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해 가상 광고의 도입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방송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는 가상광고 도입이 중간광고제나 광고총량제 도입을 위한 예비 조치는 아니나 급변하는 방송환경으로 인해 가상 광고가 더 큰 ‘괴물’로 둔갑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해 당사자인 방송사들은 가상광고를 발판으로 중간광고와 광고총량제의 도입을 원하고 있다. SBS의 한 관계자는 “현행 광고수요와 업계의 요구를 감안하면 중간광고나 광고총량제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경실련과 민언련 등 시민단체들은 “방송위가 시청자의 권리를 외면한 채 방송사들의 이익만 대변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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