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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6월 11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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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이 철저한 구매절차(Sourcing Process) 혁신에 나서고 있다.
은행들은 그동안 필요한 장비와 전산제품을 수시로 조금씩 매입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특정업체를 지정해 수의계약을 체결하거나 형식적인 경쟁입찰을 실시했기 때문에 구매단가가 필요 이상으로 높았다.
김정태(金正泰) 국민은행장은 올해를 ‘구매혁신의 해’로 선언하고 구매절차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소매금융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영업에서 추가수익을 내는 것이 어려운 만큼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 수익성을 높이는 ‘기본에 충실한 전략’이다.
▽ATM 구매는 대성공〓국민은행은 올해 소매금융을 강화하기 위해 신설점포에 필요한 현금자동입출금기(ATM) 3300대를 3번에 걸쳐 나눠 구입하기로 했다.
경쟁입찰을 실시하되 예전처럼 입찰제안서를 한번만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까지 납품가격이 내려올 때까지 계속 수정안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350대를 구입하는 2차 입찰에서 효성은 기존 납품가보다 30%나 싼 대당 2150만원을 써내 낙찰됐다.
하이라이트는 2890대를 납품받는 3차입찰. 11일 확정된 입찰가격은 2차 때보다 더 내려갔고 국민은행은 이번 입찰에서 300억원을 절약하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ATM 시장은 효성 청호컴넷 FKM 등의 과점체제였기 때문에 은행에 납품하는 가격이 모두 비슷했다. 결국 다른 은행들은 국민은행보다 30% 비싸게 사고 있는 셈.
▽구매에도 전략이 필요하다〓국민은행은 2월부터 프랑스의 구매전문 컨설팅업체인 CVA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다. 구매원칙은 △반드시 경쟁을 붙일 것 △한꺼번에 대규모 물량을 주문해 ‘규모의 경제’를 이룰 것 △에이전트 등 불필요한 구매단계축소 등 3가지다.
국민은행은 단순히 납품업체가 제시한 가격표를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시장조사를 통해 ‘너무 값이 높다’며 구매제안서(RFP)를 수정토록 했다. 개별납품업체와 반복적으로 가격협상을 벌여 값을 깎는 것.
김성철(金成喆) 부행장은 “구매과정은 고도의 심리전(戰)”이라며 “구매물량을 늘려 협상력을 확보해 납품업체의 가격담합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컴퓨터(PC) 본체와 단말기 구매 때도 이 같은 전략을 활용해 구입단가를 10% 이상 낮추는 데 성공했다.
▽내부조직과의 갈등 해소가 중요〓은행 구매의 절대량은 정보기술(IT) 투자를 위한 것이어서 구매권도 IT사업본부가 쥐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IT사업본부에서 납품을 받을 때 반드시 구매절차개선팀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예상대로 IT본부 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했으나 ‘전산구매는 엔지니어의 몫이 아니라 구매전문가가 할 일’이라는 원칙을 지켰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전 회장도 구매과정의 투명성을 높여 생산원가를 무려 20% 줄인 바 있다.
이제 구매혁신은 은행권의 새로운 경영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