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지속…일본형 불황 조짐" 한국은행 경고

  • 입력 2001년 10월 28일 18시 54분



‘최근의 저금리 기조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서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저금리가 유발할 부동산 투기, 금리생활자의 생계난 등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대기업 집단에 대한 투자제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완화해야 한다.’

국내 금리정책을 총괄하는 한국은행이 28일 내놓은 보고서에 나타난 경고 및 제안들이다.한은이 저금리시대의 긍정적인 면과 함께 ‘그늘’을 지적하고 대책수립을 공식 촉구한 것은 이례적인 일. 조만간 정책적 대응이 뒤따를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특히 대기업 집단에 대한 규제완화 부분은 공정거래위원회를 자극할 수도 있는 내용. 전철환(全哲煥) 한은총재는 보고서발표회가 열린 26일 “우리 경제는 근본적으로 저성장 저물가의 성숙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일본형 불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에 의한 생산성 향상 외에는 뚜렷한 활로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저금리시대 오래간다〓한은 보고서 ‘최근 저금리기조에 대한 평가’는 자금수급 여건의 변화가 일과성이 아닌 구조적인 점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외환위기 이후 각종 연기금이 늘어난 보험료 수입을 시장에 쏟아붓고, 외국인들이 직간접적으로 투자자금을 들여오면서 자금이 풍성해졌다는 것. 반면 기업들은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고 합리화 투자에 집중하면서 자금수요는 줄었다. 여기에 올 들어 네 차례나 콜금리를 낮춘 한은의 저금리 정책까지 가세해 초저금리시대를 앞당긴 것.

보고서를 작성한 김재천 한은 정책기획국 팀장은 “이 같은 수급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저금리시대는 오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작용과 대책〓보고서가 지적한 단기적 부작용은 크게 부동산가격의 과도한 상승, 금리생활자의 소득감소, 일부 금융기관의 역마진 등. 대부분 저금리시대가 갑자기 다가온 데 따른 ‘마찰적인 현상’으로 부동산 투기억제 및 노인층에 대한 이자소득세 감축, 사회보장 확대 등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한은이 중장기적으로 우려한 부분은 성숙경제에서 종종 나타나는 기업투자 위축→성장잠재력 저하→투자의 한계수익률 저하→기업투자 위축이라는 악순환의 고리. 바로 학계 및 민간경제연구소 등에서 줄기차게 제기했던 ‘일본형 장기불황’의 가능성이다. 보고서는 “산업 생산성을 나타내는 부가가치율에서 우리 경제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며 “대기업 투자제한조치 등을 완화해 기업이 고부가가치 부문으로 자연스럽게 이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이와 함께 보고서는 저금리 기조가 지속될 경우 은행돈을 꿔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지적하고 가계의 신용위험이 커지는 만큼 개인신용평가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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