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정부 '재계 길들이기' 나섰나

  • 입력 2001년 1월 18일 18시 43분


17일 재정경제부의 분위기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신동규(辛東奎)공보관은 몇 차례나 기자실을 찾아 이날 오전 진념(陳稔)재경부장관의 강도 높은 ‘전경련 비판’ 발언을 상세히 소개했다. 발언의 성격상 평소 같으면 ‘진화’에 나섰을 내용이었을 텐데 이날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진장관과 이남기(李南基)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약속이나 한 듯 대기업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다른 장소도 아닌 전경련주최 신년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였다. 전윤철(田允喆)기획예산처장관도 이날 저녁 기자들과 만나 전경련의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제정책 운용 방향에 관한 의례적인 설명과 ‘덕담’만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세미나에 참석했던 기업인들은 진장관 등의 ‘칼날이 서있는 발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평소 재계를 가급적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여 ‘친(親)대기업적 장관’이란 비판조차 감수했던 진장관의 발언은 뜻밖이었다.

정부가 재벌공격에 나선 직접적인 계기는 16일 나온 전경련의 ‘2001년 정책방향에 관한 의견’이란 보고서였다. 현정부의 경제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기업측 요구사항을 담은 것. 정부 고위당국자들은 이 보고서를 훑어본 뒤 분통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 오전 전경련 강연이 예정돼 있던 진장관은 이날 밤 당초 예정에 없던 ‘전경련 변화’를 포함한 ‘재계에 드리는 5가지 신년화두’라는 원고를 직접 작성했다.

그러나 재계에 대한 정부의 강경기류가 단순히 정부 비판적 보고서에 대해 발끈하는 감정적 대응차원은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 길들이기’차원에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나왔다는 것.

다만 정부가 전면적으로 ‘재벌 때리기’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무엇보다 경기가 얼어붙은 상태에서 경제활동 주체이자 국민경제에 영향이 큰 대기업의 심리를 지나치게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는 정부도 동의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정부―재계 공방은 일단 ‘제한전’으로 그치겠지만 양측의 ‘수면 아래 갈등’은 쉽게 수그러들기 어려울 전망이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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