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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2월 6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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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순위 20대 그룹에 들어가는 중견그룹의 자금담당 임원은 이렇게 고충을 털어놓았다. 21개 계열사 중 3개 계열사만이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최근 회사채 기준금리가 8%대이지만 신용위험도 때문에 15% 이상의 금리를 물어야 하기 때문.
나머지 계열사는 은행, 회사채시장, 주식시장 어느 곳에서도 자금조달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자연히 신용금고 등 서민금융기관으로 발길을 돌리지만 최근 잇달아 터진 금고사건으로 이들마저도 대출문을 꽁꽁 닫아버렸다.
이 임원은 “무엇보다 힘든 것은 금융기관에서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과 회사채를 모두 상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올해 내내 우리 경제를 짓눌렀던 기업자금난이 연말로 접어들수록 가중되고 있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사실상 대출을 중단했다. 일부 대형 신용금고와 종금사 등 제2금융권도 잇단 금융사고와 연말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대출을 전격 중단하거나 일부는 회수에 들어갔다.
또 금융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11·3 기업퇴출’ 이후 풀릴 것으로 보였던 은행 대출문은 오히려 더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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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의 투입이 지연되고 또 다른 금고사고가 예고되는 등 불안감은 더욱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달 그나마 1조원 가량 증가해왔던 은행의 대기업대출은 11월말 기준으로 전달에 비해 1300억원 이상이 줄었다. 줄어든 내용을 보면 LG SK 등 4대 그룹에는 대출이 2000억원 늘었지만 중견대그룹에서 약 3000억원 이상의 대출이 회수됐기 때문이다. 기업자금조달의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간 대우자동차와 퇴출업체의 협력업체가 갖고 있는 기존 어음을 새로운 어음으로 교환해주는 작업이 지연되면서 이들 협력업체는 하루가 위태로운 실정이다.
한국은행 박철원 조사역은 “기업퇴출 전에 그나마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통해 자금지원을 했던 은행들이 금융권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대출을 극도로 보수적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기업금융팀 관계자는 “특히 내년 경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연말 들면서 은행권을 더욱 움츠러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라며 “정부 금융권 기업간의 신뢰도 점점 사라져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증시 회사채시장 은행대출창구 등 3대 기업자금 조달처가 모두 막혀 있고 내년 1·4분기까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흥은행 홍칠선(洪七善)상무는 “IMF체제 전후에는 회사채 발행과 증시에서 유상증자를 통해 기업이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이 중 21조원이 내년 3월말 만기가 돌아오는 상황에서 신규자금을 조달할 수 없어 그때보다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