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돌린 경제…안심하긴 이르다

  • 입력 2000년 11월 28일 18시 56분


《대우자동차 노사가 구조조정에 극적으로 합의한 27일 오후. 재정경제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우리 경제를 뒤덮고 있던 불안요인들이 조금씩 걷혀가고 있는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대우차 노사 합의는 단순히 이 회사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제의 전반적인 분야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던 우리 경제에 하나둘씩 ‘호재’가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구조조정을 둘러싼 진통 등 우리 경제를 괴롭힐 수 있는 불안요인은 곳곳에 숨어 있어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5가지 호재〓대우차 노사의 극적인 구조조정 합의는 매각협상이 본격화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대내외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강성으로 비쳐지던 이 회사 노조가 인력감축을 포함한 구조조정에 합의했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원화환율 급등(원화가치 급락)과 주가급락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인 국내 외환시장과 주식시장도 급속히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달러당 원화환율은 1200원 돌파가 임박하는 등 치솟다가 다소 진정되는 모습이다. 500선 붕괴 우려까지 낳았던 종합주가지수도 27일에는 550대로 올랐다.

혼돈에 빠졌던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가 27일 발표된 것도 우리 경제에는 나쁘지 않다. 실제로 이 소식은 한국증시에 호재로 작용했다. 미국 대선 논란 진정은 국제유가 등 다른 해외변수 안정과 맞물려 해외발 악재 발생의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

2차 공적자금 조성을 둘러싼 국회심의가 본격화되면서 이 문제도 곧 매듭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여야간 이견은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풀려갈 공산이 크다는 것. 정부당국자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여당과의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공적자금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국회에 나갔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경제에 대한 외국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 밖에 LG그룹이 네덜란드 로열 필립스전자와의 합작법인을 설립키로 합의하고 11억달러 규모의 대규모 외자유치에 성공함으로써 ‘자금위기 악성루머’에서 벗어난 것도 호재로 꼽힌다.

▽5가지 불안요인〓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근심거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가장 큰 복병은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을 둘러싸고 계속되고 있는 ‘동투(冬鬪)’의 진통. 특히 한전 노사문제 등 노조와 정부간의 ‘노―정 대결’은 어떤 양상으로 결말이 날지 관심이다. 노사갈등은 내년에도 ‘태풍의 핵’이 될 것 같다.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소비 및 투자심리 위축은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는 소비 및 투자심리를 살리기 위해 부분적인 활성화정책 등 각종 대책을 검토중이지만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내놓기는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

건설경기를 어떤 식으로 살릴 수 있을 것인지도 과제. 9월중 건설수주금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8.4% 줄었고 선행지표인 건축허가면적도 증가세가 격감하고 있다. 건설경기 불황은 특히 지방경제에 직격탄을 날린다는 점에서 정치사회적 불안요인이 될 수도 있다.

기업들이 연말연시에 자금사정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여전하다. D증권 관계자는 “삼성 등 몇몇 우량기업을 제외하면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시장에서 쉽게 돈을 조달할 수 있는 기업은 극소수”라며 “전반적인 기업자금난 문제는 연내 해결기미가 안 보이고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실업증가는 구조조정과정에서 불가피하지만 당분간 우리 경제의 두통거리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정부 공식전망에 따르더라도 평균 실업률은 내년 2월까지 4.4%로 높아지고 실업자수는 96만명에 이를 것 같다. 좀더 상황을 심각하게 보는 전문가들 중에는 ‘실업자수 100만명 시대’가 임박했다는 관측도 하고 있다. 실업증가에 따르는 사회적 안전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현실에서 고용불안의 후유증을 어떻게 최소화할지가 과제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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