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급등에 의혹]국제 환투기세력 다시 왔나

  • 입력 2000년 11월 24일 18시 39분


최근 5일째 지속되고 있는 원―달러환율 급등의 이면에는 일부 환투기세력이 가세한 영향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97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남아를 외환위기로 몰아넣었던 국제 환투기 세력들이 다시 돌아왔을 수도 있다는 것.

이같은 투기적인 행태가 감지되고 있다는 게 외환딜러들의 얘기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역외선물환(NDF)시장에서 투기 목적으로 미리 달러를 사들이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기업들도 정유사 항공사를 중심으로 달러를 사전에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기업도 달러확보 나서▼

그러나 경제전문가들과 외환당국 관계자들은 97년의 헤지펀드와 같은 국제 환투기세력의 ‘환(換)공격’ 조짐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 전철환(全哲煥)한국은행총재는 금융기관장 오찬간담회를 열어 이같은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국제 환투기 세력의 위력은〓국제 환투기 세력의 위력은 92년 영국중앙은행과 국제 금융계의 큰손인 조지 소로스의 한판 대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소로스는 10억달러를 유럽 환시장에 투입해 영국 파운드화를 팔고 대신 독일 마르크화를 대거 사들였다. 그 결과 파운드는 마르크에 대해 폭락했고 영국 중앙은행은 수백억달러의 돈을 풀어 파운드화 하락 저지에 나섰다. 그러나 끝내 소로스라는 개인투자자에게 영국중앙은행이 백기를 들었다.

한국은행 이창복(李昌馥)외환시장팀장은 “투기거래는 달러가 실제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거래하는 것”이라며 “전 세계 외환거래의 90%가 투기거래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환투기 어떻게 이뤄지나〓외환당국은 앞으로 필요한 달러를 미리 사들이는 성격의 가수요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차익을 노리고 거래하는 투기세력은 10∼20%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주로 우리나라 외환시장에서 투기세력으로 지목되는 것은 국내 외국계은행과 국제투자은행들. 이들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투자한 외국인투자자들의 달러 상승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NDF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해 달라는 주문을 통해 투기거래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외국인투자자가 100만달러를 사달라고 하면 국제투자은행은 자기자금을 50만달러 정도 보태 사들여 자기차익을 챙기는 형태이다.

LG경제연구원의 이창선(李昌善)책임연구원은 “투기세력들은 NDF에서 1개월물을 사서 단기차익을 챙기는데 아직도 3∼6개월물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투기 세력이 많이 가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97년 외환위기와 최근 환율상승의 비교

분 류97년 하반기 환율 폭등시최근 1주일 환율 상승
원인대내적 요인△한국경제 악화로 외국자본 연이은 이탈
△은행의 단기해외차입금 상환으로 외 환보유고의 급속한 소진(97년 200억 달러 소진)
△무역수지 적자 악화로 달러공급 급감
△정유사 달러결제 수요 급증 으로 일시적 수급 불일치 발생
△한국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의구심 증대
△국내 달러 가수요 가세
대외적 요인△동남아 외환위기 전염△대만달러 등 주변국통화약세
투기세력개입여부△국제 헤지펀드 준동
△국내 외국계은행 선물 이용한 투기거래
△헤지펀드 위력 크게 감소
△국제투기세력 개입 강도 낮음
외환방어능력△낮은 외환보유고(96년말 294억달러)
△고정환율제로 외환시장 인프라 미비
△외환보유고 933억달러
△외환자유화 시행
취약점△외환시장 규모가 작아 아직 도 충격에 취약
외환위기연결여부△외환위기로 IMF관리체제 돌입△외환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은 희박

▼"투기표적 배제못해"▼

▽97년과는 다르다〓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200억달러에 불과했고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본격 이탈하면서 경제 펀더멘털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어서 국제 환투기 세력의 표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한 외국계 딜러는 “환율이 오를 게 뻔한 상황에서 투기세력이 달려들지 않는 것은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 상황은 97∼98년과는 다르다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 97년 당시에는 국내 현물환시장과 역외선물환시장이 분리되어 있어 역외선물환 시장의 원―달러환율이 통상 20% 가량 높았지만 99년 4월 1단계 외환자유화로 지금은 이런 차이가 없어졌다.

국제금융센터의 전광우(全光宇)소장은 “당시 국내가격이 800원대였으나 역외시장은 1000원대를 넘는 등 차이가 컸기 때문에 주로 외국계은행에서 국내 현물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여 역외시장에 내다 팔며 차익을 챙겼지만 지금은 이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외국자본이 구조조정의 불신 등으로 한국을 이탈할 조짐이 보이면서 환율이 계속 오르면 우리나라가 다시 환투기 세력의 표적이 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현진·이나연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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