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개혁 더 늦출순 없다]연구비 타서 술값에 3억 펑펑

  • 입력 2000년 11월 24일 18시 35분


<<공기업 개혁 작업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전력 노조의 파업선언에서 드러났듯이 개혁추진 과정에 적잖은 풍파가 예상된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공공부문 개혁 전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국가 경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다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어둡다”고 지적한다. 정부나 노조, 국민 모두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총론에는 찬성하지만 자신의 이해관계에 걸리면 각론에서는 반대하는 양상이 뚜렷하다. 방만한 공기업의 경영 실태를 파헤쳐 공기업 개혁의 당위성을 살펴보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싣는다.>>

▽세금 먹는 하마〓한국통신은 9월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로부터 한목소리로 질타를 받았다. 97년부터 직원의 20%인 1만2000명을 감원했지만 인건비는 오히려 22%나 늘어났다. 연구개발본부 등 3개 부서가 연구활동비 17억2000만원을 단란주점 술값(3억4807만원)과 개인물품 구입, 직원 회식비 등으로 사용한 것 등을 추궁받은 것.

9월 공기업에 대한 감사원의 특별감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통신은 94년이후 투자비 손실과 인건비 과다 집행, 부적절한 예산 집행 등으로 1조4000여억원의 예산을 낭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뿐만 아니다. 한국외환은행의 환은런던금융 등 2개 현지법인과 런던지점 등 8개 해외지점의 경우 최근 3년중 2년이상 결손이 발생했다. 3개 현지법인과 런던지점 등 12개 지점은 지난해말 현재 9774억여원의 무수익 여신을 갖고 있어 부실채권비율이 11∼58%에 달했다. 이는 국내 시중은행 평균(6%)보다 10배 높은 수준.

공기업 민영화 추진 현황

회사현황향후 일정
포항제철―산업은행지분(4.6%)DR발행(9월29일)

―잔여지분(2.2%)자사주 매각으로 민영 화 완료

-
한국중공업―국내공모(9월23일, 24%) 및 국내증시 상장(10월25일)

―지배주주 선정을 위한 경쟁입찰(36%) 공고(10월30일)

―경쟁입찰 절차 진행

―낙찰자 선정(12월12일)

한국종합화학―청산 절차 진행을 위한 사장 선임

(10월24일)

―해산 결의, 청산인 선임

(11월중)

한국전력―민영화 관련 3개 법안 국회 계류중―법안 통과시 분할 매각 추진
한국통신―DR발행(99년5월)지분율 89.2%→59%―2002년6월까지 잔여지분 매각
한국가스공사―국내공모(99년12월)지분율 85.7%→51.2%-
담배인삼공사―국내공모(99년9월)지분율 89.2%→63%-

또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자회사인 기보캐피탈과 산은캐피탈의 자회사인 산업할부금융, 기업은행 자회사인 기은상호신용금고 등도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금융업무를 하면서 운영 부실로 모회사가 대신 1070억원의 빚을 갚아주기도 했다.

이밖에 청산 절차를 밟고 있는 한국종합화학은 공장 가동기간인 96년부터 99년까지 매출액이 555억원에 불과했지만 영업손실이 1491억원에 이르는 등 ‘돈먹는 하마’의 표본으로 지적돼 왔다.

▽비능률의 극치〓이런 상황속에서도 공기업의 인력이나 조직구조, 씀씀이에 대한 개선 작업은 부진한 실정이다.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인 한국건설관리공사는 수주 물량이 줄어들어 지난해 4월부터 올 4월까지 적게는 109명, 많게는 138명이나 일손이 남아돌았다. 그러나 이 회사는 인력 감축없이 보직대기 또는 재택근무 형태로 직원들을 근무시키면서 인건비로만 32억원을 지급했다. 농업기반공사는 경기지사 등 8개 지사와 그 산하에 86개 시 군 지부를 운영하면서 경리 등 지원부서 인원이 전체 인원의 최고 70%에 달했지만 조직개편을 하지 않았다. 한전의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은 노사화합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별다른 근거없이 노조 구성원인 책임급 이하 직원 1469명을 1호봉씩 특별 승급시키기도 했다.

부채가 10조원에 달하는 도로공사는 96년부터 올 9월까지 229대 관용차 중 50대를 직원들에게 헐값에 매각했다. 94년에 2065만원에 구입한 무쏘차량을 지난해 중고차시세의 5분의1인 135만원에 판 것. 특히 도공은 간부 전용차를 69대나 보유하고 있으며 고속도로 교통지도차량으로 그랜저를 운영하고 있다.

▽혈세로 누린 풍요〓공기업 직원들은 방만한 경영으로 민간기업이나 다른 부문의 근로자보다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려왔다. 한국통신 자회사로 최근 휴대전화 보급에 따라 경영이 악화되고 있는 한국공중전화는 당초 예산에 편성되지도 않았던 추석특별장려금(28억원)을 유지보수비 예산을 전용해 지급했다. 또 사장 개인의 박사과정 등록금(585만원)까지 회사 예산으로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포항제철 등 14개 기관은 97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경영실적 평가에 따른 특별성과급을 지급하면서 특별성과급이나 특별격려금을 기준보다 많이 지급하거나 구체적인 근거없이 지급하는 방법으로 총 444억여원을 썼다.

국민은행은 노조가 신임 은행장의 취임 반대를 철회하는 조건으로 보로금 지급을 요구하자 예산도 확보되지 않은 특별보로금 162억원을 다른 곳에서 빼내 지급했다. 명예퇴직금도 통상임금 12개월분에서 18개월 분으로 확대하기로 노조와 합의하고 7월말까지 88억원을 추가로 지급하기도 했다.

연세대 경제학과 하성근(河成根)교수는 “공기업 개혁을 위해서는 회계 감사 등 객관성있는 자료를 수시로 공개해서 시장에 의해 압력을 받도록 해야 한다”며 “민간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공공 부문 개혁은 고통 분담과 모범을 보여준다는 차원으로라도 더욱 강도높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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