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그룹 "구조조정 왜 했던가"…이자보상배율 낮아져

  • 입력 2000년 10월 23일 18시 46분


한 중견그룹의 재무팀장 Y씨는 퇴출기업을 가리는 결정적인 기준, 이자보상배율이 거론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한다. 그룹의 몇몇 핵심 계열사가 분사 합작 자산매각 등 구조조정을 열심히 한 탓에 오히려 이자보상배율이 낮아져 회사 이미지가 나빠졌기 때문.

6월말 현재 이 그룹 A계열사의 이자보상배율은 0.91이고 계열사 B는 0.77. 수치만 놓고 보면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으로 대출금 이자도 갚지 못하는 전형적인 부실기업인 셈.

하지만 Y팀장은 “영업외이익으로 잡히는 금액까지 합하면 실제 현금흐름은 훨씬 양호하다”며 “구조조정 안하고 버텼다면 이런 수모는 안 당했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무슨 사연인지, 재무제표를 따져가며 그의 설명을 들었다.

▽구조조정 위해 우량부문 분사〓계열사 A는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 등 석유화학 1차 원료와 PVC 바닥재 창틀 파이프 등 가공재를 만드는 제조업체. 수직계열화 체제로 운영되던 이 기업은 외환위기 이후 석유화학 업종의 중복 과잉경쟁이 문제가 되자 지난해 7월 소비재 분야를 따로 떼어 독립시켰다(자회사 ①). 작년 말엔 기초원료 부문을 경쟁업체와의 자율 빅딜 형식으로 별도법인을 만들어 분사시켰다(자회사 ②).

그룹 관계자는 “기업 덩치를 줄이고 부문별로 생산을 특화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며 “당시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적극 호응하자는 취지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자회사 ①은 이자비용 110억원, 영업이익 192억원으로 이자보상배율이 1.75인 우량기업. 계열사 A가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②의 이자보상배율은 2.03이다. 계열사 A의 영업이익과 이자비용을 두 자회사와 합해 평균을 내면 이자보상배율은 1.17로 높아져 퇴출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룹 일각에서 ‘분사하지 않고 3개부문을 한 회사로 유지했더라면…’하는 아쉬움섞인 분석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

▽“현금은 들어오는데 이자보상배율은 여전히 낮고…”〓자회사 ①과 ②가 벌어들인 이익은 대주주인 A사로 유입된다. 문제는 회계 처리상 영업이익이 아닌 영업외이익으로 분류돼 이자보상배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안된다는 점.

계열사 A는 여유 자금을 금융기관에 굴려 159억원의 이자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자수익을 감안해 계산한 이자보상배율은 1.09로 안정권.

금융당국은 여유 돈으로 빚을 갚으면 금융비용을 줄일 수 있지 않느냐는 논리지만 이는 기업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얘기라는 게 업계의 반박. 모기업 재무담당자는 “요즘처럼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는 은행대출이 막힐 것에 대비해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이 그룹의 계열사 B는 에너지 및 부품 제조업체의 지분 중 50%와 70%를 외국기업과의 합작 형태로 처분했다. 합작기업이 흑자를 내면 지분에 비례해 이익이 돌아오지만 영업외이익으로 잡혀 마찬가지 논리로 이자보상배율과는 상관이 없다.

재계 관계자는 “이자보상배율만 놓고 기업 퇴출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채권단이 최종 판정할 때 업종별 특성 못지않게 이처럼 개별기업의 숨겨진 사연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야 선의의 피해자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자보상배율>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수치가 1미만이면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잠재적 부실기업으로 간주된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