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현대해법 '오락가락'…자율해결서 강경 선회

  • 입력 2000년 8월 8일 23시 20분


정부의 현대해법이 자율과 강경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현대문제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추호의 후퇴도 없다”며 강경기류로 바뀌었다.

진념(陳稔)재정경제부장관과 이근영(李瑾榮)금융감독위원장은 개각 직후 현대문제는 채권단과 기업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8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현대문제 조기 성과’ 지시에 따라 채권단을 통해 현대측에 자구계획안을 조기에 발표하도록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이날 현대그룹에 정식공문을 보내 기존의 3개 요구사항에 대한 답변을 19일까지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이 공문에서 자동차 중공업 계열분리를 앞당기고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경영진의 퇴진을 주문했다. 부동산 및 주식매각 등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구책도 보강할 것을 요구했다. 자구규모가 1조4000억원에 미달할 경우엔 대주주의 사재출연도 압박카드로 내놓을 방침이다.

이에 앞서 금감위 관계자는 이날 “새 경제팀은 현대문제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간여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며 “현대그룹과 채권은행들이 협의해서 문제를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데 경제팀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진장관과 이기호(李起浩)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이위원장은 개각 직후인 7일 오찬회동을 갖고 기업구조조정 방식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위원장은 금감위 간부들을 불러 “현대문제는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며 “현대와 채권단이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하고 정부는 일절 간여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재경부는 8일 대통령의 조기 성과 지시에 따라 현대문제와 관련해서는 추호의 후퇴도 없으며 현대는 조속한 시일 안에 시장이 납득할 만한 자구 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현대는 이르면 금주 중 계열분리안을 포함한 자구안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소떼를 몰고 이날 방북길에 오른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 회장과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 회장은 막판까지 버티기에 나섰지만 정부의 강공으로 강력한 자구안 제출이 불가피해졌다.

▽정부 왜 오락가락했나〓금감위 현대담당 관계자들은 8일 하루종일 청와대와 고위층의 속내가 무언지 파악하느라 일손을 놓고 있었다. 전날 진장관과 이위원장은 개각 직후 “현대문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는 안된다”며 “채권은행단과 현대가 알아서 자율로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는데 갑자기 강경기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개각 직후 주가가 폭락하면서 시장참여자들이 “이제 개혁은 끝난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낸데다 김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현대문제를 거론하며 새 내각의 능력을 현대문제 처리로 판단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정부의 진의는 무엇인가〓개각 직후 형식상으로는 정부가 ‘한발 빼는’ 인상을 줬다. 일개 그룹을 정부가 직접 접촉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모양새라는 것. 현대그룹이 정부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도망다니는 상황이 정부의 권위와 신뢰를 추락시키고 있다는 판단이다.

금감위는 그동안 “현대문제를 그냥 시장이 해결하도록 놔두면 그룹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정부는 지금 현대를 살리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짜내면서 지원하고 있다. 시간이 급한데 그냥 놔둘 정도로 사태가 한가롭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위기감 때문에 현대를 연일 공격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전술측면에서 그리 성공한 작전이 아니었다는 자체분석이다.

새 내각은 어쨌든 정부가 질질 끌려다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형식상 채권은행을 통해 현대를 압박하지만 정부 의지는 강경하다는 입장을 초기에 내보였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개혁의지가 약해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여전하다. 진념―이기호―이근영 구도가 개혁성향이 덜한 사람들로 짜여져 있다는 점이 이같은 관측에 힘을 더하고 있다. 전술상 변화가 전략교체로 이어질지는 아직 두고봐야 할 상황이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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