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재경 맹장수술]출근길 쓰러져 4시간 병원헤매

  • 입력 2000년 8월 5일 01시 10분


‘경제팀의 수장’인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이 4일 급성 맹장염으로 쓰러져 긴급 수술을 받았다.

이장관은 이날 오전 7시40분경 경기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던 도중 재경부 정문 앞에서 심한 복통을 느끼면서 쓰러졌다. 재경부 직원들은 이장관을 승용차에 싣고 과천 일대를 돌아다니며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의약분업에 반대해 문을 열지 않은 병원이 많은데다 일부 병원은 시설 부족을 이유로 접수에 난색을 표해 직원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장관은 가까스로 한 병원에 입원했으나 “상태가 심상찮으므로 더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충고에 따라 비서진은 이장관을 서울 영동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다. 이 때가 11시30분경. 이장관은 이 과정에서 고통이 심해져 한때 정신을 잃기도 해 비서진들은 ‘변고’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손에 땀을 흘렸다.

서울 영동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이장관은 진단 결과 급성맹장염으로 밝혀졌다. 병원측은 “바로 조치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다”며 긴급수술에 들어갔다.

수술 후 이장관의 의식이 회복된 것은 오후 7시경. 그러나 수술 상처가 아물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 같다. 빠르면 내주초에 퇴원할 수도 있지만 충분히 회복하려면 최소한 일주일은 입원해야 할 것 같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

병원측은 “이장관이 과로와 긴장이 누적된 상태에서 개각이 임박했다는 소식으로 긴장이 풀리면서 쓰러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장관은 당초 그동안 미뤄놓았던 여름휴가를 갈 예정이었으나 개각설이 나돌면서 휴가를 취소하고 정상출근을 하던 중이었다.

재경부 공무원들은 이장관의 갑작스러운 수술소식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그동안 너무 고생했는데 막판에 병까지 얻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장관이 조기퇴원하지 못하면 재경부는 개각이 이루어질 경우 장관 이임식도 못하게 된다. 1944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난 이장관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행정고시 6회에 합격, 69년 ‘가장 막강한 경제부처’였던 재무부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했다.

대통령 경제비서실 근무와 재무부 이재국 금융정책과장, 재정금융심의관을 거치면서 승승장구하던 이장관은 79년 9월 ‘뜻하지 않은 일’로 낙마해 공직을 떠난다. 이후 대우 임원과 한국신용평가 사장, 증권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전전하면서 18년간 ‘야인’의 길을 걷던 그는 97년 12월 김대중(金大中)후보의 대통령 당선 직후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실무기획단장에 기용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장관은 당시 김대통령당선자에게 경제현안을 일목요연하게 논리적으로 브리핑해 강한 인상을 주었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김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맺지 않았던 이장관이 김대통령의 눈에 띈 것은 재무부 근무 당시 상사로 모셨던 김용환(金龍煥)의원의 천거에 의한 것이라는 설과 김대통령이 이장관의 장인인 고 진의종(陳毅鍾)전총리와 좋은 사이였다는 설 등이 있다.

이장관은 98년 3월 금융감독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발탁되면서 ‘DJ 경제개혁의 전도사’로까지 불리면서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을 주도, 경제정책 분야에서 김대통령에 이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금감위원장에서 물러나자마자 올해 1월 재경부장관으로 옮기는 등 현정부 전반기의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제팀’간 불협화음과 일부 정책의 차질 등으로 곤욕을 치르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그는 ‘올해의 구조조정 기관장’(99년 5월 홍콩의 월간 아시아머니지) ‘아시아개혁을 주도하는 지도자 50인’(99년 6월 미국 경제주간 비즈니스워크) ‘아시아 파워 16위’(올해 5월) ‘올해의 재무장관’(올해 5월)으로 선정되는 등 현정부 경제각료 중 해외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권순활·이명재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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