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시장 변화 중간점검]정유사 '검은 담합' 수술대에

  • 입력 2000년 7월 26일 18시 31분


“원유를 전량 수입하고 독과점 체제로 움직이는 국내 석유시장이 정유사 중심으로 왜곡 운영돼 온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국내 한 정유사 간부의 솔직한 ‘고백’이다.

본보가 지난달 말부터 잇따라 정유사들간의 담합, 원가 부풀리기, 탈세와 덤핑유의 유통, 주유소 폴사인제(상표표시제)의 허구성 등 국내 석유시장의 고질적 병폐를 고발해 온 이후 정유업계에 ‘변화의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일부 정유사가 폴사인제의 폐지를 정부에 건의했는가 하면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군항공유 구매 비리와 관련해 현역 장성을 구속했고 산업자원부 공정거래위 국세청 등 관계 기관도 광범위한 실태 조사와 함께 개선책 마련에 나선 것.

‘전략적 에너지자원’이란 허울조차 벗어제치고 군항공유 구매 입찰에 가격 저항을 해 군비축유를 사용(본보 7월7일자)하게 만든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정유업계에 사상 처음으로 ‘메스’가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급류를 탄 정유업계 안팎의 움직임을 중간 점검한다.

▽정유사 담합과 군항공유 바가지 구매〓정유사들이 시장점유율 유지와 수입석유의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해 ‘철통 담합체제’를 구축해 왔다는 본보 보도(6월27일자)에 따라 공정위는 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현재 전국의 지방사무소를 가동, 강도 높게 조사를 진행중이며 빠르면 다음달 말쯤 결과가 나올 예정.

국방부가 98, 99년 항공유 바가지 구매로 1200여억원의 혈세를 낭비했다는 보도(7월5일자)에 대해서도 공정위 조사가 진행중이다. 이와 관련해선 국방부도 구매 관계자들의 유착과 금품 수수 여부에 대해 자체 조사중이다. 지금까지 장성 1명과 영관급 1명이 구속됐고 추가 구속이 확실시된다.

국회의 13일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은 이 담합구조의 근본 원인이 ‘정유사 위주의 시장구조’에 있다며 이를 ‘소비자 위주’로 바꾸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원가 부풀리기〓정유사들이 각종 석유제품의 공장도가를 국제가보다 월등히 높게 책정, 99년 한해에만도 최대 2조원의 폭리를 취했다는 보도(6월28일자)가 나가자 정유사들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정유4사의 98, 99년 재무제표를 정밀 분석해 “원가 산정에 의혹이 있다”며 본보 보도를 뒷받침했다. 아울러 정부 정유사 및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유가공동조사단’을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국회는 대정부질문과 상임위 회의를 통해 정유사들에 대한 지도감독 의무가 있는 산자부와 정유사간의 유착 의혹까지 제기했다.

▽덤핑과 탈세〓정유사와 대리점, 중간판매상(부판) 등의 덤핑으로 석유시장 유통 질서가 엉망이 되고 이에 따라 탈세가 횡행한다는 보도(6월29일자)가 나올 무렵 국세청도 전국 규모의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결과는 빠르면 9월초쯤 나올 전망.

산자부는 덤핑과 탈세를 막기 위해 인터넷 상에서 공급자(정유사)와 소비자(주유소 또는 대형구매처)가 직거래하는 전자상거래 제도를 도입할 방침이며, 석유업계 일각에선 ‘정유사의 공급 과잉’ 자체를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폴사인제〓 소비자에게 보다 질 좋은 석유제품을 공급한다는 명분 아래 92년 도입된 폴사인제가 정유사들의 ‘시장 나눠먹기’ 장치로 변질, 소비자를 우롱하고 있다는 보도(7월3일자)에 따라 현재 이 제도의 존폐를 둘러싼 논란도 진행중이다.

정유4사의 하나인 S―Oil은 21일 정부에 이 제도를 폐지하고 한 주유소가 여러 정유사 제품을 취급할 수 있게 하는 복수 폴사인제를 도입하자고 건의했다. 주유소협회도 26일 청와대 산자부 공정위 등에 같은 취지의 건의서를 냈다.

산자부는 8월 중순경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의뢰한 폴사인제 개선안 등 석유제품 유통구조 개선안이 나오는대로 공청회를 열어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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