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거진 현대 유동성 위기 파장]정부 "방치땐 위험"

  • 입력 2000년 7월 25일 18시 36분


현대 8개 계열사에 대한 신용등급 격하로 야기된 현대의 유동성위기 파장이 심상치 않다.

정부는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이 25일 현대의 자금난 악화설을 일축하고 금융시장에 추가자금 공급의사를 밝히는 등 ‘긴급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현대건설이 이날 임직원 월급을 제때 주지 못했고 현대전자와 현대중공업간 내분이 불거지면서 상황이 간단하지 않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현대문제가 ‘시장불신’과 맞물려 있어 현대 측의 적극적인 노력이 없는 한 상황이 더 심각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왜 발빠르게 움직였나〓현대 측은 한국기업평가(한기평)의 신용등급 격하조치를 정부의 ‘현대 길들이기’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계열분리 문제에 소극적인 현대를 압박하기 위해 극약처방을 내놓았다는 것.

그러나 이재경장관은 25일 현대를 달래고 자금시장 불안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는 특히 “시장참여자들이 무책임한 행동으로 ‘쪽박을 깨는’ 사태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금융기관에 현대를 압박하지 말도록 주문했다. 정부의 발빠른 대응은 금융시장 특성상 신용등급 격하로 야기된 금융시장의 불안을 방치하면 현대가 정말 위험한 상황에 몰릴 수 있으며 전체 국민경제에도 큰 악재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

▽시장불신이 위기 낳았다〓정부가 개입했는지 여부와 별도로 현대가 시장에서 신뢰를 상실했다는 사실이 신용등급 하향조정의 한 원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 현대 측은 불만을 표시하고 있지만 현재 시장에서 현대의 이미지는 창사이래 최악이다.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현대가 직면한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자금위기라기보다는 ‘황제경영’과 경영권 다툼, 현대차 계열분리 난항 등으로 현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해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현대문제가 어떻게 발전하느냐를 가름할 1차적 초점은 현대차 계열분리문제. 이와 관련해 정부와 현대사이에 이 문제의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나돌아 주목된다. 일본에 출장중인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은 당초 이번 주말경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앞당겨 귀국, 정부와 대화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조치가 시장안정에 얼마나 기여할까〓이재경장관의 발언은 시장심리를 일단 안정시키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25일 현대 계열사 주가가 예상보다 덜 떨어진 것이 이를 반영한다.

그러나 금융전문가들은 채권펀드 조성 규모보다는 실제 펀드가 가동되느냐와 현대의 자구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반응. 특히 정부가 아무리 대책을 내놓더라도 현대 측이 시장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백약이 무효’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많다.

▽격앙된 현대〓현대 측은 한기평의 신용등급 격하조치를 ‘현대 죽이기’로 받아들이면서 격앙된 분위기. 특히 현대그룹의 모기업으로 적극적인 자구노력이 진행중인 현대건설을 ‘투기등급’으로 떨어뜨린 것은 현대의 숨통을 끊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며 반발했다. 현대건설은 이날 한기평 측에 임직원 10여명을 보내 김윤규(金潤圭)사장 명의로 된 항의문을 전달했다. 현대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을 낮춘 사례는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현대 측의 이런 분위기는 이재경장관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다소 누그러졌으나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권순활·박현진·홍석민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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