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협상 경쟁력 왜 낮나]한국 길어야 3년 근무

  • 입력 2000년 7월 20일 18시 31분


‘20년 대 3년.’

우리 통상협상의 국제경쟁력은 이 숫자에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18, 19일 한국과 조선 협상을 갖고 20일 돌아간 살바토르 살레르노 유럽연합(EU) 집행위 철강 조선과장은 한국에 지인이 무척 많다. 70년대부터 20년 이상 조선 철강 분야에만 근무하면서 수많은 한국측 대표들을 만난 덕분이다.

산업자원부 이희범(李熙範)차관보는 “91년 제네바에서 철강 협상을 하던 당시 그를 처음 만났다”며 “그 이후에도 계속 한 분야를 지켰다”고 말했다.

그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은 산자부의 대표적 통상통인 김영학(金榮鶴)수송기계산업과장도 그와의 오랜 인연을 털어놓았다. 88년 국제회의 때 처음 만난 이래 통상회의 때면 어김없이 살레르노를 만나게 된다는 것.

올해 60세인 살레르노는 영화 ‘대부’의 주인공의 고향인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출신. 시칠리아 젊은이들이 흔히 마피아의 총을 잡는 반면에 그는 서류와 펜을 들고 ‘통상 전쟁’에 뛰어들었다. 조국 이탈리아의 주력 산업인 조선과 철강업이 점차 경쟁국에 밀려 처지는 것을 보고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로 인생의 방향을 잡았기 때문.

70년대 EU집행위에 들어간 이후 20여년. 크고 작은 통상 협상을 거치면서 그는 조선과 철강분야 통상문제에 관한 한 손꼽히는 베테랑으로 자랐다.

20여년간의 통상 업무는 그의 성격까지 바꿔놓았다. 이탈리아인 특유의 다혈질의 성격은 줄어들고 통상협상에 필수적인 냉철함과 과묵이 몸에 뱄다.

많은 나이에도 그의 직급은 ‘겨우’ 과장. 87년 이후 13년째 승진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은 ‘안했다’는 편이 맞다. 살레르노는 승진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승진은 중요하지 않으며 내 전문분야를 가지고 몰두할 수 있다는 게 행복”이라고 말했다.

88년 조선협상이 시작된 이후 그의 맞은편에 앉은 한국측 파트너의 얼굴은 참으로 자주 바뀌었다. 12년간 거의 1년에 한번 꼴로 바뀌는 한국측 파트너의 얼굴 익히기에 바빴을 정도. 그가 20년간 협상대표로 참석하는 동안 한국 대표는 길어도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서류를 제대로 검토하지도 못하고 협상에 들어간 한국측 대표들은 그에게 당하기 일쑤다.

“그 얘기에 대해 당신 전임자는 다른 소리를 했는데…”라고 공박을 하는 걸로 그는 한국측의 기선을 제압한다.

한중 마늘분쟁에서 드러난 것처럼 우리의 통상협상력이 약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살레르노처럼 한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를 키우지 못했다.

그래서 베테랑들이 즐비한 국제통상 무대에서 미국과 유럽 대표들이 서로 성(姓)이 아닌 이름만을 부르며 깊숙한 얘기를 나눌 때 우리는 부러운 듯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다. ‘20년과길어야 3년’의 차는 그래서 적지 않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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