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訪北경제인들 소감]"北 경협 적극적…정말 뭔가 될것 같다"

  • 입력 2000년 6월 16일 01시 10분


코멘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수행하고 2박3일간 북한을 방문한 뒤 15일 서울로 돌아온 경제인들은 이날 저녁 각각 기자들과 만나 방북소감을 밝혔다.

경제인들은 북한측에 대북투자 확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청했으며 북한측도 긍정적이었다고 밝혔다. 또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인상과 방북기간 중의 몇 가지 비화도 털어놓았다. 다음은 경제인들이 밝힌 방북소감.

▽손병두(孫炳斗)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북한의 환영인파 표정을 자세히 봤더니 동원된 게 아니라 진심으로 환영하는 느낌을 받았다. 김정일위원장은 물론 북측 인사 모두 남한 언론을 샅샅이 보는 것 같았다. 박동은 조선통일연구소 참사가 ‘바다를 보며 웅지를 키웠다’는 김재철 무역협회장 편지가 남측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를 해 우리 일행이 모두 깜짝 놀랐다.

우리 경제인들은 두 정상간에 남북 공동선언이 체결됐다는 소식에 한껏 고무돼 14일 밤 11시경부터 ‘한잔’을 했다. 술을 마시던 중 14일자 한국신문이 도착해 다시 통일을 화제로 얘기꽃을 피웠다. 15일 오찬 때는 김정일위원장의 유머가 압권이었다. 김위원장은 박권상 KBS사장에게 “나는 남한방송 중 KBS를 제일 먼저 보고 이어 MBC SBS를 본다”고 말한 뒤 “역시 관영언론을 먼저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여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장치혁(張致赫)고합 회장〓우리 기업인들은 북한측에 경협을 위한 국제적 기준에 맞는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방지협정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청했고 북측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문제는 조만간 남북 당국간에 구체적인 논의가 있을 것으로 안다. 지금까지는 빙빙 도는 얘기만 해왔는데 이번에 만나보니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는 것 같더라. 먼 일가친척 두 사람을 만났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잘 지내고 있었다.

▽김재철(金在哲)무역협회장〓북한사람들과 대화할 때 언어장벽이 조금 있을 걸로 생각했지만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15일 평양을 출발하기 전 김정일위원장과 함께 먹은 오찬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곰발바닥 요리도 맛보았고 야자열매에 상어 지느러미를 넣은 요리는 최고였다. 김정일위원장은 대단히 솔직하고 소탈하고 머리회전이 빠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작은 것에도 신경을 쓰는 섬세한 면이 보였다.

▽손길승(孫吉丞)SK 회장〓막상 남한을 떠날 때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김정일위원장이 공항에 직접 영접을 나오고 김대통령과 자동차도 같이 타고 만찬에서도 두 분이 손을 맞잡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됐다. 산업시설현장을 본 것은 별로 없지만 북한의 컴퓨터센터는 일정궤도에 오른 것을 보았고 북한 역시 컴퓨터 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을 느꼈다. 시골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농촌에서 모내기하는 모습과 옥수수가 자란 모습을 보고 식량문제는 곧 해결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본무(具本茂)LG 회장〓개인적으로 첫 방북이어서 설렘을 갖고 떠났다. 평양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떠나기까지 내내 북한이 보여준 열광적 환영에 감명을 받았다. LG도 현재의 대북사업 현황과 계획을 점검하여 컬러 TV 합영공장 설립이나 비무장지대에 국제물류센터 건립 등 사안별로 대북사업을 구체화시키고 가속화시켜 나갈 계획이다. 방북기간 중 불편한 점은 없었다. 음식도 맛깔스러웠고 시설도 좋았다.

▽윤종룡(尹鍾龍·56)삼성전자부회장〓정상회담을 계기로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사업 환경이 개선되고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남북 당국간 대화의 진전과 사업 인프라의 개선 정도에 맞게 필요한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생각이다.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이사〓북한측과 구체적인 사업문제를 이번에 논의하지는 않았다. 이달말 정주영 전현대명예회장의 방북 때 북한측과 구체적인 협상을 벌일 생각이다.

▽이원호(李源浩)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우리측은 주로 들으려는 입장이었으나 북측은 이번 기회에 뭔가 이뤄지길 희망하는 것 같았다. 북측의 의지가 느껴졌다. 8, 9월경 50명 규모의 중소기업 대북투자조사단이 방북하겠다고 우리가 제안했고 북측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남측 입장에서 물류나 전력사정이 좋은 휴전선 근처에 중소기업 전용공단을 조성하고 싶다는 생각도 전달했다.

▽백낙환(白樂晥)인제학원 이사장〓북한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모내기가 이미 끝났어야 할 시기인데 절반도 안된 상태였다. 그러나 공항에서 평양으로 가는 길은 아주 깨끗하고 잘 가꿔져 있었다. 김정일위원장은 악수를 할 때 손도 크고 꽉 잡았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지막지하지 않고 유연성이 있었다.

앞으로 화해무드가 조성된다면 인제대의대 의료진을 북한에 파견해 어린이 언청이수술 등을 무료로 시술해주고 싶다. 단 북한 어린이들을 데려와서 수술해주는 것은 안된다. 북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다. 언젠가 평북 정주에 병원을 짓고 싶다.

<경제부·금융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