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內紛]MH 우나 웃나…심경싸고 두가지 해석

  • 입력 2000년 6월 1일 19시 30분


아버지의 대를 잇는 현대그룹 회장으로 인정을 받았다가 하루아침에 회장직을 내놓게된 정몽헌(鄭夢憲)회장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참담한 표정이다. ‘왕자의 난’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얻은 후계자의 자리를 빼앗겼다는 점에서 그는 이번 파동의 최대 피해자인 셈이다. 더욱이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이 3부자 퇴진 결정을 하면서 차세대 주역인 자신과 전혀 상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정몽헌회장이 1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어느 아버지가 똑똑한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싶지 않겠느냐”는 정명예회장의 평소 발언을 들면서 “이번 결정이 평소 정명예회장의 소신에 상치하지만 따르겠다”고 한 것은 이런 심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있다. 회장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애석하지만 후계자 경쟁에서 항상 걸림돌이 되어왔던 정몽구(鄭夢九)회장의 힘을 이번에 무력화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득이 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주로 정몽구회장측 인사들의 주장이다.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발표문에 따르면 정몽구회장은 아무런 보직도 없이 물러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에 반해 정몽헌회장은 대북사업을 맡았다. 대북사업은 정명예회장의 숙원이자 현대의 명운이 걸린 중대 사안이다. 창구는 현대아산으로 단일화되어 있지만 사업진전 여부에 따라서는 건설 상선 전자 등 범그룹 차원에서 공동으로 사업이 진행될 수도 있다. 정몽헌회장으로서는 최소한 다시 재기할 발판은 갖고 은퇴하는 셈이다.

정몽구회장측 인사들은 이 점을 들어 “정몽헌회장의 최근 행보가 고도의 속임수”라고 주장한다. ‘3부자 동시퇴진’이라는 결정이 정몽구회장을 잘라내기 위해 정몽헌회장과 측근들이 꾸민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시각에 따르면 정몽헌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가 현대그룹 전체를 다시 장악하는 시나리오아래 움직이고 있는 셈.

대북사업은 분명히 기회이다.6월 남북정상회담이후 방북, 대규모 남북경협 프로젝트를 성사시킬 경우 그는 경영인으로서 화려하게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정몽헌회장측은 이런 ‘음모론’이야말로 불순하다고 반박한다. 형을 ‘제거’하기 위해 회장직을 내놓을 만큼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느냐는 것. 또 대북사업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상당한 위험도 안고 있다.

정몽헌 회장의 깊은 속마음은 난마처럼 얽혀있는 현대사태와 마찬가지로 그리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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