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퇴진 3부자 스토리]王회장 '비감한' 최후승부

  • 입력 2000년 5월 31일 20시 00분


맨 땅에서 창업한 지 53년. 정주영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아무도 예상치 못한 승부수를 던졌다.

정주영(鄭周永) 현대명예회장 3부자의 퇴진으로 2대에 걸친 ‘창업과 후계의 드라마’는 가장 극적인 단계로 접어들었다.

반세기 동안 개발연대의 주역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21세기 현대를 이끌고 나가려던 두 형제의 야망도 일단 아버지에 의해 날개를 접을 수밖에 없게됐다.

그러나 아직 두 아들이 그대로 따를지는 미지수. 평생 아버지에 순종해온 몽구회장은 “이번만은 아버지의 말씀을 따를 수 없다”며 반기를 들었다.

▽아버지가 세운 기업,아들이 지킨다〓‘왕회장’은 80년대부터 “나 이후로 현대에 회장이란 직함은 없어질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러나 이 말이 오너 일가의 완전 퇴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그룹을 아들들에게 나눠주는 작업을 일찍부터 시작했다. ‘내가 피땀 흘려 세운 기업을 내 핏줄이 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확고했다. 창업동지였던 동생들을 분가시킨 것도 2세 승계를 위한 정지작업이었다.

왕회장은 그러나 ‘능력 있는’ 후계자를 원했다. 아들들에게 혹독한 후계 수업을 시킨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80년대 전경련회장 시절 “능력이 없는 아들에게는 기업을 맡기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 것도 아들들에 대한 메시지였다.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집안을 다스린 아버지의 이 말은 아들들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주었다. 한밤중 고속도로를 달리다 교통사고로 숨진 장남 몽필씨나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생각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넷째 몽우씨의 죽음은 사실상 이런 부담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계싸움에서는 승리했으나〓‘몽(夢)자’ 8형제 중 최종 후계자 후보는 결국 두 사람으로 압축됐다. 몽필씨의 유고로 장남 역할을 하게 된 몽구씨, 그리고 다섯째 몽헌씨.

공부를 잘해 아버지가 항상 “우리 집안의 자랑거리”라고 하던 동생 몽준씨는 정치에 뜻을 두면서 후계 구도에서는 비켜났다. 현대의 ‘적자’로 간택 받은 두 사람에게는 그러나 더 큰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최종낙점을 받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승부였다.

두 사람간에 외형상 경쟁 체제가 가시화된 것은 98년 초 몽헌회장이 그룹의 공동회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96년 초 그룹회장을 맡고 있던 삼촌 정세영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물러나고 정몽구회장이 그룹회장에 오른지 2년만이었다. 재계에서는 전례를 볼 수 없던 ‘투톱체제’였다. 그러나 아직은 아버지의 최종 낙점이 떨어지지 않은 상황. 이때부터 두 형제는 양보 없는 싸움에 들어갔다.

결국 올 초 재계를 떠들썩하게 한 ‘왕자의 난’을 겪고 난 뒤 그룹의 법통은 동생 몽헌씨에게 돌아갔다. 몽구씨는 법통 경쟁에서는 밀려났지만 그룹에서 가장 덩치가 큰 자동차를 장악함으로써 장자의 체면을 세웠다.

하지만 두 형제의 싸움은 현대의 전근대적 경영 이미지를 시장에 깊이 각인시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결단이 두 형제에게는 자업자득이었던 셈이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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