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3부자 동반퇴진]"이렇게까지 할 줄은…"

  • 입력 2000년 5월 31일 19시 48분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의 파격적인 경영개선 계획을 접한 시장과 금융당국, 재계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3부자 전격퇴진이 시장에 미칠 파급효과와 내부반발을 걱정하는 엇갈린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다른 재벌들은 ‘오너일가 자진사퇴’의 파장을 경계하는 기류를 보였다.

▼정부 "기대이상" 평가▼

▽정부〓현대 지배구조 개선을 현대건설 유동성 문제를 푸는 핵심 열쇠로 지적해온 정부는 일단 ‘기대 이상의 결단’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금융감독위원회는 “3부자 퇴진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히고 “이번 결단이 시장신뢰를 얻을 것으로 믿고 경영개선계획이 성공적으로 시행되길 기대한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오후 4시쯤 정몽구회장이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금감위내에선 ‘일이 꼬여가고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

금감위의 한 간부는 “현대 오너일가가 한꺼번에 물러나는 것이 국내외 투자자에게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정명예회장의 결단을 추켜세웠다. 그러나 현대투신 정상화계획 작성에 깊숙이 개입했던 금감위 고위관계자는 “전후사정을 잘 파악해봐야겠다”며 유보적인 입장.

▼"오너체제 붕괴" 불안감▼

▽재계〓전국경제인연합회 이용환(李龍煥)상무는 “‘필름이 끊길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3부자 퇴진은 개별 기업의 정책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서 재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재벌 체제가 갖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현대 사태를 재벌 전체의 문제로 확대 해석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박영세(朴永世)이사는 “삼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문 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고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왔기 때문에 시장은 삼성회장의 퇴진을 요구하진 않고 있다”고 밝혔다.

▼침체 증시 회복 기대감▼

▽시장〓일부 국내 증시전문가들은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만큼 시장이 요구하는 수준 이상의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현대가 준비했다는 것. 재벌 구조조정에 대해 실망했던 외국인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따라 주식시장의 회복은 의외로 빨라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래에셋 이병익 운용본부장은 “3부자 퇴진으로 현대사태는 사실상 봉합됐다”며 “이후 1,2개 계열사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룹 전체의 유동성위기로는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3부자 퇴진 이후의 현대그룹 장래에 대해선 좀더 지켜봐야한다는 의견도 적지않았다.

리젠트자산운용 이원기사장은 “계열사의 재무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며 “외자유치 계열사 해외매각은 현대측의 희망사항으로 아직 확정된 것은 하나도 없는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지금처럼 일부 은행의 자금회수가 진행된다면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못박았다. 현대건설의 1·4분기 기준 단기차입금이 3조5000억원으로 지급이자가 경상이익과 맞먹는다는 우려.

이 같은 우려 탓인지 오후2시 직후 급등했던 현대계열사 주가들은 장이 끝난 뒤 ‘시간외 매도물량’이 나오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경제부·금융부종합>eco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