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후계구도 정리…정몽헌회장 전자-건설-금융 장악

  • 입력 2000년 3월 24일 19시 33분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회장의 인사문제로 불거진 몽구 몽헌씨 두 형제간의 갈등이 결국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후계구도를 정몽헌(鄭夢憲)회장체제로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다.

정몽헌회장이 정명예회장을 면담한 뒤 현대그룹측이 밝힌 인사파동 관련 조치는 크게 세가지. △정몽구회장을 그룹 경영자협의회 의장에서 제외하고 △정몽구회장은 자동차소그룹에만 전념하며 △이익치회장은 현대증권회장직을 유지한다는 것으로 정몽헌회장측의 완벽한 승리라고 할 만하다. 정몽헌회장은 이에 따라 현대그룹의 5개 소그룹 중 전자 건설에 이어 금융 부문까지 장악, 실질적인 후계자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반면 정몽구회장은 현재 맡고 있는 현대자동차 및 기아자동차 경영에만 전념할 전망이다.

현대는 이번 파동의 후유증으로 연쇄 인사의 태풍이 불어닥칠 것으로 보인다. 두 형제의 갈등 과정에서 그룹 내 경영진이 양쪽으로 극명하게 갈려 대립했기 때문에 정몽구회장쪽 인사들이 대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또 이번 사태가 전근대적 경영구조에서 비롯된 형제간 재산싸움으로 비쳤기 때문에 현대그룹은 이에 따르는 사회적 불이익도 감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재벌에 대한 2차 구조조정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현대가 타깃이 될 것이 유력하기 때문.

이에 앞서 정몽헌회장은 24일 오후 2시경 귀국, 오후 3시경 서울 종로구 계동 본사사옥에 도착한 뒤 김윤규(金潤圭)현대건설사장으로부터 경과보고를 받고 오후 4시경 이익치회장과 함께 정명예회장을 방문, 15분간 면담했다.

그는 귀국 직후 기자들의 질문에 “인사문제는 나는 모른다. 왜 나한테 물어보느냐”고 답한 뒤 굳은 표정으로 공항을 빠져나가 자신이 없는 사이에 발표된 인사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익치회장도 24일 현대증권으로 ‘당당히’ 출근, 기자들과 만나 “인사는 대주주가 결정해 구조조정본부장이 통보하도록 돼있는데 아직 인사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말해 ‘현대증권의 대주주인 정몽헌회장의 지시만 듣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당초 현대자동차의 한 고위인사는 23일 이회장이 귀국하자 “이회장이 내일 현대증권으로 출근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보기좋게 빗나갔다. 24일 이회장의 출근 사실과 정몽헌회장의 공항 발언에 이어 그룹측의 발표가 전해지자 현대자동차측 인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책회의를 갖는 모습이 여러번 목격됐다.

정몽구회장측은 22일 정명예회장이 청운동 집을 몽구씨에게 물려주자 명예회장이 이번 인사 파동과 관련해 몽구씨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사실상 현대 후계자로 몽구씨를 지정한 것”이라고 말하는 등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으나 이틀만에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이병기·최영해·박중현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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