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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9월 7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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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8·15경축사를 계기로 개혁의 ‘화살’이 총수의 경영전횡과 경영권세습 등 역대 어느 정권도 건드리지 않았던 민감한 문제를 겨냥하면서 나타난 전선(戰線)이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정부의 강공에 순응하는 자세를 보였던 재계는 ‘배수진’을 치고 정부 개혁논리를 반박하기 시작했다.
▽막 내린 ‘협조게임’〓환란(換亂)의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는 국민적 공분이 들끓던 지난해 1월13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4대그룹 회장은 “주력 핵심사업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경쟁력을 높인다”는데 합의했다.
이어 비상경제대책위(위원장 이헌재·李憲宰 현 금융감독위원장)가 부채비율 200%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총수의 이사등재(책임경영)를 압박했을 때도 재벌들은 ‘벅차지만 수용가능한’ 목표로 받아들였다.
지난해 7월 이후 진행돼온 5대그룹간 사업구조조정(빅딜)에 대해서도 재계는 정부와의 ‘협조게임’으로 간주했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내각제 및 2000년 총선일정을 감안할 때 강공이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란 계산이 일각에서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재계의 위기감〓김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이같은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켰다. 10일 뒤인 25일 청와대 정재계간담회에서 △기업지배구조개선 △2금융권 지배구조개선 △변칙상속 방지 등 ‘+3’원칙이 구체화하면서 재벌총수의 월권(越權)과 경영권 세습이 ‘사정권’에 들어왔다.
재정경제부 등이 내놓은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과 사외이사 절반 확충 등의 개혁안은 재벌총수의 계열사 지배를 종식시킬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
이달 1,2일 현대증권 주가조작 사건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삼성 이건희(李健熙)회장 일가의 세무조사 방침이 발표되자 재계는 서슬퍼런 칼날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시중에는 이회장 일가가 엄청난 증여세를 물게 되고 LG그룹 역시 창업일가인 구씨와 허씨를 중심으로 그룹을 쪼개야 하는 상황이 불가피하다는 루머까지 퍼지고 있다.
H그룹 관계자는 “8일 열릴 6대이하 30대그룹 총수의 청와대회동도 ‘5대그룹 포위작전’의 일환이라는 게 재계의 일반적 관측”이라고 말했다. 워크아웃 법정관리 등으로 힘을 잃은 6대이하 재벌들을 개혁의 ‘원군’으로 끌어들여 5대그룹에 대한 개혁 압박을 더욱 강화하려 한다는 해석이다.
▽물러설 수 없는 재계〓재벌체제의 골간을 뒤흔드는 정부의 개혁안에 재계는 화전(和戰) 양면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손병두(孫炳斗) 전경련부회장은 7일 정부측에 △사외이사 50% 확충을 ‘강제’하지 말 것 △출자총액제한제도 실시에 경과기간을 둬야 한다는 재계안을 전달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8일 열릴 기업지배구조개선위의 공청회에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 전문가와 안복현 제일모직 대표를 출석시켜 정부의 개혁안에 대한 재계측 입장을 대변토록 할 방침이다.
전경련은 이와 별도로 재벌개혁에 대한 광범위한 설문조사를 실시, 정부를 압박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