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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3월 19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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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鄭周永)현대명예회장이 느닷없이 ‘아파트 판촉’에 나섰다.
19일 ‘왕회장(정명예회장)’은 20년만에 아파트 공사현장을 방문해 그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이날 오전 경기 김포 청송마을의 현대건설 아파트 모델하우스는 아침 일찍부터 ‘귀한 손님’ 한명을 맞을 준비로 부산했다. 10시40분, 도열하고 있던 수백여 직원들은 70년대말 이후 처음으로 아파트 공사현장에 나타난 ‘왕회장(정명예회장)’을 환호로 맞았다.
84세의 노(老)회장은 이날 그 어느때보다 건강해보였다. 평생 공사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답게 ‘현장에 나가면 기운을 내는 체질’인듯 했다. 왕회장은 직접 경품(금강산 관광 티켓)추첨까지 했고 공사현장으로 옮겨 오랜만에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왕회장의 방문은 현대건설 직원들의 사기도 충천케 했다. 한 임원은 “회장이 방문한 아파트는 분양이 훨씬 잘 된다”며 왕회장의 ‘상품성’에 기대를 보였다.
정명예회장의 이날 ‘행차’는 이번주들어 갑작스레 결정됐다. 김윤규(金潤圭)현대건설사장은 “내가 권유해 나오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시기가 미묘해 궁금증을 품는 이들이 많다. 공교롭게도 동생인 정세영(鄭世永)현대산업개발명예회장이 새로 아파트사업을 시작한 직후라서 그렇다. 아파트 분야에서 이제 경쟁자 관계가 된 현대산업개발을 견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정몽헌회장은 “쓸데 없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정회장은 “현대건설이 아파트 사업을 현대산업개발에 넘겨줄 것이라는 얘기는 사실무근”이라고 말해 ‘현대건설〓대형토목공사, 현대산업개발〓아파트’의 구획정리설을 일축했다.
정회장에 따르면 현대산업개발은 올 상반기 안에 계열분리되면 회사명은 사용할 수 있지만 ‘현대’ 로고를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현대아파트’의 브랜드 가치가 3조∼4조원인 점을 감안할 때 정세영회장측에 작지 않은 타격이다. 왕회장의 이날 행보는 그래서 ‘현대 아파트’를 둘러싼 형제간 새로운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