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남반도체 김주진회장, 외자 6억달러 유치

  • 입력 1998년 9월 22일 19시 19분


21일 6억달러 외자 유치에 성공한 아남반도체. 그 성공 스토리 뒤편엔 투자자를 수십번씩 직접 찾아다니며 설득 작전을 벌인 김주진(金柱津)회장의 숨은 공이 있었다.

김회장이 막바지에 접어든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미국에 도착한 것은 14일. 미국은 온통 클린턴 스캔들 얘기뿐이었다. 미국 증시와 국제 금융시장은 완전히 엉망이었다. 최대 25억달러를 목표로 태평양을 건넜던 김회장은 막막했다.

그간의 사정을 알고 있던 월스트리트의 유태계 ‘큰손’들이 연락을 해왔다. 대부분 김회장의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상과대 동문들.

“닥터 킴, 25억달러 유치는 현재 상황에선 어려울 것 같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는 충고였다. 이때 살로먼 스미스바니증권과 보스턴은행이 “일단 1차로 국내에 있는 6개 사업부 가운데 하나를 6억달러 정도에 양도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해왔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1차분 6억달러 유치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아남의 외자 유치는 하루이틀만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아남은 올해초부터 미국의 투자유치단을 여러 차례 한국에 불러들였다. 일단 공장을 둘러보고 투자를 결정하라는 뜻. 이들은 수도권과 광주에 자리잡은 아남반도체의 6개 사업부를 일일이 방문, 치밀한 실사작업을 벌였다. 부채는 많았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방문단은 주목했다.

외자 유치를 가로막는 국내 조세 제도의 문제점이 불거져 나온 것도 이때. 투자유치단은 △수도권 소재 사업장은 감세(減稅)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 △부지까지 완전히 매각하는 포괄 사업양도가 아니면 부가가치세가 감면되지 않는 점 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실익이 있을까 하고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김회장은 이때가 가장 아찔했다고 한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아남의 자회사가 있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아남은 5월 미국내 판매법인인 암코사를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상장시켰다.

당시 상장에 앞서 김회장은 투자 설명회를 위해 아예 전세기를 50일간 빌렸다. 우선 처음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와 미국내 56개 도시를 직접 돌았다.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데다 미국내 기업 경험도 풍부한 김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오너가 직접 유창한 영어로 회사의 상황을 설명하자 여기저기서 ‘원더풀’이 터져나왔다.

김향수(金向洙)명예회장때인 68년 국내기업으로는 최초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아남그룹. 천문학적인 설비투자가 필요한 메모리 반도체 대신 반도체 조립 분야에 전력 투구, 현재 아남은 이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25%로 당당히 1위를 달리고 있다. 아남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아 아남산업에서 아남반도체로 사명을 바꿨다. 반도체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 이번 외자 유치는 그 첫걸음이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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