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 재벌그룹산하 28社,「中企고유업종」진출

  • 입력 1998년 3월 1일 21시 02분


현대건설이 시공하는 건설현장에는 중소 아스콘업체들이 얼씬도 못한다. 매출액 4조원이 넘는 이 회사가 ‘중소기업 고유업종’인 아스콘제조업에 참여, 직접 시공하기 때문이다.

중동에 진출한 중소 판지업체 A사 임직원들은 어렵사리 현지업체들의 주문을 따내고도 계약이 완전 체결될 때까지 이 사실이 국내에 유출되지 않도록 극도로 보안에 신경을 쓴다.

국내 대형 제지업체들이 중동까지 쫓아와 덤핑에 나서는 바람에 ‘다된 밥에 재를 뿌려대는’ 쓰라린 경험을 겪은 게 엊그제의 일이다. 1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30대 그룹(96년 4월 자산기준) 계열사중 중소기업 고유업종(총88개)에 진출한 대기업은 15개 그룹 28개사.

30대 그룹에 속하지 않은 대기업까지 포함하면 총 98개 대기업이 32개 중소기업 업종에 진출한 상태. 현대건설이 아스콘제조와 양곡도정, LG전선이 박용전선과 마그네트선, 대우전자가 도금사업을 하고 있으며 ㈜쌍용이 생석회를 제조하는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수직계열화’차원에서 중소기업 고유업종에 진출했다.

이들 대기업은 △관련 업종이 중간제조공정이거나 △수출에 주력할 경우 △사업장 인근에 관련 중소기업이 없는 경우에 한해 중기 고유업종에 진출할 수 있다는 법규정을 근거로 정부승인을 받았다.

박상희(朴相熙)기협중앙회 회장은 지난달 27일 “새 정부가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수평적 분업관계를 강조하고 있다”며 “국내 중소기업의 공급량만으로도 국내 수요가 넘칠 경우에는 대기업 관련 시설을 해외에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은 1일 발표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 제도가 제도실시전 고유업종에 참여한 기존 대기업만을 보호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래정·홍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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