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산업 육성정책/3개부처 실무당국자 좌담]

  • 입력 1997년 11월 9일 18시 17분


《잇따른 대기업의 도산과 해외신용도 추락, 환율 주가의 널뛰기식 등락으로 경제가 위기상황에 몰려 있다. 경제난을 풀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위기에 빠진 우리 경제를 되살릴 돌파구로 기대되는 벤처산업의 육성방안에 대해 재정경제원 통상산업부 정보통신부 3개 부처 실무당국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병우차관보〓요즘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일각에선 『벤처기업 육성은 한가한 이야기가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잘못된 생각입니다. 경제위기의 원인이 구조적인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벤처기업 육성은 지금 당장 착수해야 할 현안이며 미루면 또다른 구조적인 문제를 낳게 됩니다. ▼추준석차관보〓경제가 어려워진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산업구조가 지나치게 노동집약적 산업에 치우쳐 있기 때문입니다. 임금도 많이 올랐고 물류 및 금융비용이 높은 고비용구조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은 기술 지식집약적 산업, 즉 벤처기업이며 이것이 활성화하면 고비용구조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보통신산업은 소품종을 대량생산하는 대기업보다 창의력이 뛰어나고 기동력을 갖춘 벤처기업을 주축으로 개편될 것입니다. ▼정홍식정책실장〓우리 경제에서 떠오르는 산업인 정보통신의 비중이 커지면서 「위험도 크고 잠재수익도 큰」 사업기회가 무제한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정보통신분야는 기술력 하나로 모험을 거는 기업이 뜨게 돼 있습니다. 정보통신시장 자체가 「벤처」적이라고나 할까요. 흔히 「중소기업〓벤처」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틀린 얘기입니다. 벤처기업은 반드시 창의적인 기술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기술뿐 아니라 기발한 사업아이디어도 벤처의 바탕이 되기는 합니다만…. 벤처기업은 정보통신분야가 압도적입니다. 미국의 경우 벤처기업의 72%가 정보통신분야로 분류됩니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조금 낮지만 벤처기업협회 회원사 3백48개중 61%가 정보통신분야입니다. ▼추차관보〓미국 경제는 벤처기업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벤처기업은 국내 경제에서도 이미 상당한 규모를 형성했다고 봅니다. 창업투자회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1천5백여개의 벤처기업이 7만명 이상을 고용, 연간 9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들 업체는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올 상반기 매출을 28%, 당기순이익은 62% 늘리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습니다. ▼안차관보〓올해 정부의 경제시책은 △벤처기업 육성 △지방중심 경제활성화 △금융개혁 이 세 가지로 가닥을 잡을 수 있는데 첫번째가 벤처기업 육성입니다. 벤처기업육성특별법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온지 불과 4개월만에 법안이 마련될 정도로 각 부처가 의기투합한 「작품」입니다. 벤처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보면 됩니다. 벤처기업 육성은 성장에 대한 접근방식 및 패러다임의 전환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즉 벤처기업정책은 한계에 이른 기존의 산업체제에 새로운 「성장의 싹」을 접목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추차관보〓정부 정책은 여건에 적절히 부응했다고 봅니다. 정부가 벤처기업 정책을 펴기 이전부터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거죠. 대학가에서도 벤처기업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 관련 「동아리」가 1백여개가 된다고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벤처단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 경쟁적으로 청사진을 내놓고 있죠. ▼정실장〓정부의 벤처기업정책은 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유망중소기업 육성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정책을 「벤처」라는 새로운 이름과 틀 속에 넣어 계속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차관보〓부처별로 벤처기업 지원을 위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재경원은 자금조달 문제를 풀어주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벤처기업가들은 사업자금의 46%를 자기 돈으로 충당하는 반면 직접금융은 12∼13%에 그치는 실정입니다. 재경원은 직접금융을 통한 자금조달이 원활해지도록 9월부터 개인이 벤처투자조합에 출자하는 경우 출자액의 20%를 과세소득에서 공제하고 배당소득은 종합금융과세소득 대상에서 제외하는 세제 감면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또 개인투자자가 일정요건을 충족하면서 벤처기업에 출자할 경우 자금출처조사를 면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이는 금융실명제의 유일한 예외입니다. ▼추차관보〓통산부는 기술과 인력 벤처단지 등으로 정책방향을 잡았습니다. 국내 벤처기업은 핵심 기술은 갖고 있더라도 보완적인 기술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핵심 기술이 있어도 수많은 연관 기술을 갖지 못하면 상품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지요. 우수한 인력과 기술이 함께 공급되도록 교육부와 협의, 국공립대 교수가 벤처기업을 창업할 경우 3년 동안 휴직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잘 안되면 언제든지 학교로 돌아오라는 것이지요. 또 스톡옵션을 활성화해 벤처기업들이 우수인력을 끌어오게끔 주식 액면가를 5천원에서 1백원까지 낮출 수 있게 했습니다. 벤처기업이 활동할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벤처단지는 국공유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상징인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벤처단지를 착공했습니다. ▼정실장〓정부 주도보다는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나서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궁극적으로 정부의 역할은 규제를 없애 소자본으로 창업을 왕성하게 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데 있습니다. 이를테면 기술인력이 풍부한 대학 주변에 벤처기업들이 자생적으로 형성돼 그것이 벤처단지로 발전하도록 초고속통신망을 깔아주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안차관보〓정부는 정보통신업체들의 무대인 통신인프라 구축에 주력할 계획이죠. 예컨대 초고속통신망을 구축하고 요금을 인하해 인터넷을 확산하는 등의 과제를 추진중입니다. 한국전력이 갖고 있는 케이블TV망을 초고속망으로 활용해 통신요금을 낮추는 방법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정실장〓최근 통신산업의 경쟁적인 도입과 자율화로 「과당경쟁」이 우려될 만큼 통신인프라의 이용요금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전의 케이블TV망을 통신망으로 활용하는 문제는 지금 당장은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초고속망으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추차관보〓통산부는 다음달 실리콘밸리에서 국제 벤처기업회의를 열고 벤처기업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등 국제적인 교류도 벌이고 있습니다. 벤처기업이 활발한 나라로 소문난 이스라엘과는 벤처산업 공동육성을 위한 기금을 만드는 방안을 협의중입니다. ▼정실장〓정보통신분야 벤처기업들은 창업단계부터 해외로 뻗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정보통신부는 벤처기업의 해외투자를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외환사정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달부터 납입자본금 1백억원 이상인 중소기업의 해외투자를 가능하도록 제도를 바꿨습니다. 내년에는 자본금 제한이 더 낮아질 것입니다. 또 내년에 미국 실리콘밸리에 해외소프트웨어지원센터를 설립, 중소기업들이 현지기술을 얻어오거나 그곳에서 직접 창업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안차관보〓현재 벤처기업 정책수립은 통산부, 집행은 중소기업청이 맡고 있습니다. 부처간의 이견조정 등 협의를 위해 벤처기업협의체가 구성되어 있는데 재경원장관을 위원장, 통산부장관을 부위원장으로 하고 정부 16개 부처 장관 및 청장이 위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달 중에 첫 회의를 가질 예정입니다. ▼추차관보〓대기업 중심의 경제발전은 이제 한계에 왔다고 봅니다. 이제는 기술력있는 중소기업들이 전면에 나서 우리 경제를 선도해 가야 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벤처붐」이 정부로 하여금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정책을 만들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는 셈이지요. ▼정실장〓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의 탄력성(Flexible) 없는 구조가 벤처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입시제도와 주입식 교육 같은 경직된 교육제도, 유연성이 부족한 노동시장, 현실을 못 따라가는 법제도가 「창의력」을 생명으로 하는 벤처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뼈아픈 얘기지만 정부 조직도 벤처산업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나 않은지 자성해볼 필요가 있어요. ▼안차관보〓정부가 벤처기업을 육성한다고 나서니까 기술력 없는 중소기업들은 『우리는 뭐냐』고 항의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기존의 중소기업 육성정책은 그대로 추진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기술력」을 갖춘 벤처기업을 추가로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현안에는 정부 부처간에 이견이 많고 업무조정도 쉽지 않지만 벤처기업 육성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입니다. 모처럼 벤처산업 육성을 위한 사회적인 여론이 모아진 만큼 이번에는 우리나라에도 빌 게이츠 같은 「벤처영웅」이 나올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적극 뒷받침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입니다. 〈정리〓김학진·백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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