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 등 주요 채권금융기관장들은 26일 회의를 갖고 기아그룹이 화의와 법정관리중 하나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형식적으로는 「공」을 기아측에 떠넘겼다.
채권단은 그러나 기아측이 화의를 선택할 경우 신규자금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거래은행별로 기아 계열사를 부도처리해 나간다는 것이다.
유시열(柳時烈)제일은행장은 『화의절차가 진행될 경우 자금 추가지원은 물론 협력업체의 연쇄부도 가능성이 높아지고 해외채무청구가 집중되는 등 정상화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채권단은 겉으로는 양자택일을 하라고 하면서도 기아그룹이 화의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전혀 남겨두지 않은 셈이다.
유행장은 또 『법정관리는 자금 지원이 가능해 회사 정상화를 위해서는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말해 채권단이 법정관리를 유일한 사태 해결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기아자동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면 결국은 제삼자에 매각되는 길을 걷게 될 전망이며 이 경우 그동안 끈질기게 기아 인수를 추진해온 삼성그룹의 인수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재계에선 보고 있다.
채권단이 기아에 법정관리를 「권유」하면서도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정부와 채권단이 기아사태의 파행으로 인한 책임을 지지않겠다고 밝힌 셈. 강경식(姜慶植)부총리 등이 『앞으로 협력업체의 부도 등 기아사태의 부작용으로 인한 모든 책임은 기아측에 있다』고 말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채권단이 이같은 결정을 하게 된 배경에도 정부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했다.
강부총리는 물론 김인호(金仁浩)청와대경제수석도 공개적으로 『화의는 기아그룹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채권단의 선택을 사실상 외길로 강요해왔다.
다만 채권단이 주도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기로 하지 않은 것은 일부 은행과 종합금융사 등이 법정관리에 반대하는 등 금융기관별로 의견이 엇갈린 때문이다.
종금사 사장단의 경우 26일 정오 긴급 사장단 모임을 갖고 기아가 적정금리 보장 등 화의조건을 수정, 제시할 경우 화의에 동의해 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채권단은 기아측이 화의 신청을 번복하지 않을 경우 각 채권금융기관들이 스스로 알아서 동의여부를 결정하도록 했으나 주요 채권금융기관들의 현 입장으로 볼 때 화의에 동의해 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 실정이다.
기아자동차의 화의는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나 최대 여신은행인 산업은행중 한곳만 반대해도 성립하지 않는다.
〈천광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