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뒷북치는 경제대책

  • 입력 1997년 8월 14일 20시 25분


강 건너 불보듯이 경제난을 방관하던 정부가 위기상황을 맞고서야 대책마련에 부산하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은행 신용도가 추락해 해외자금 조달에 비상이 걸리자 부랴부랴 불끄기에 나섰다. 기아(起亞)문제도 중소협력업체의 연쇄부도나 경영난을 방치하다가 뒤늦게 지원책을 내놓았다. 위기를 수습하고 예방하는 데 앞장서 나가지 못하고 허둥지둥 뒷북만 치는 정부가 한심하다. 경제정책에 시행착오가 있어서는 안된다. 경제는 한 번 그르치면 원상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매번 정책대응에 실기(失機)하고 있다. 기아 부도위기 후 정부는 해외금융시장의 우리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도에 별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다가 최근 국제신용평가기관이 제일은행의 신용등급을 낮추는 것은 물론 다른 시중은행과 국책은행 신용도까지 급락시킬 위기에 처하자 특융(特融)이다 증자지원이다 하며 법석이다. 국제금융시장 동향을 미리 파악하기는커녕 오판(誤判)을 한 셈이다. 기아처리 과정에서도 당장 급한 기업 회생과 협력업체 도산방지는 뒷전이고 미뤄도 될 경영진퇴진 제삼자인수 등을 놓고 정부 및 은행과 기아의 감정싸움으로 한달을 허송하고 나서야 본격 수습에 나섰다. 그 바람에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중소기업만 고통을 겪고 있다. 이처럼 정책대응이 한발씩 늦는 것은 경제정책당국이 내세우는 「시장경제원리」 탓도 크다. 민간연구기관이나 재계가 경제난 수습에 정부가 적극 나서라고 주장해도 경제팀은 원론적인 시장원리만 고집하다 때를 놓치고 뒤늦게 개입하는 우(愚)를 범했다. 시장원리에 의한 경제운용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현실을 무시하고 이를 밀어붙여선 곤란하다. 이제라도 정부는 각 부문의 애로를 제대로 파악해 경제난 극복에 중심역할을 하기 바란다. 이것 저것 따지느라 부실은행 지원을 미루기엔 상황이 너무 절박하다. 특융이나 증자지원 정부보증 등 정부가 검토중인 방안들을 적절히 조화시켜 금융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 해외자금 차입금리가 올라가고 만의 하나 차입 자체가 어려운 사태를 맞는다면 큰일이다. 우선 은행 신용도를 회복시키고 부실채권 정리와 인수합병 등을 통한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정부가 할 일이 많다.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동시에 정부는 실물경제가 활력을 찾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업들이 부도공포에서 벗어나도록 금융 세제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군살을 빼 체질을 강화하려는 기업 구조조정에 걸림돌을 없애주는 일도 정부 몫이다. 안정기조를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조심스럽게 경기를 진작시킬 필요도 있다. 기업인이 경영의욕을 잃으면 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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