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이 살아남는 길

  • 입력 1997년 8월 12일 20시 38분


국내 30대 재벌그룹이 공정거래법에 따라 내년 3월말까지 해소해야 할 계열사간 상호채무보증액이 6조7천억원에 이른다. 줄여야 할 상호출자도 2조4천억원이다. 재계는 9조원이 넘는 빚보증과 상호출자를 해소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나 이미 수년전부터 추진해 온 정책이다. 정부는 압력에 밀려 재벌구조 개선정책을 후퇴시켜선 안된다. 재벌그룹도 이번 기회에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 그간 재벌들은 여유자금 없이도 상호출자로 문어발식 기업확장에 몰두했고 상호빚보증을 통해 은행돈을 무한정 끌어썼다. 빚보증과 출자로 얽히고 설킨 선단(船團)을 형성한 재벌은 계열사 하나만 부실해져도 그룹 전체가 휘청댄다. 최근의 재벌부도가 온 국가경제를 어려움에 빠뜨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선단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재벌도 망하고 국민경제도 멍든다. 30대 그룹의 빚보증 총규모는 64조원이고 상호출자는 17조원에 달한다. 빚보증액은 규제가 시작된 93년 이후 많이 줄었으나 상호출자는 오히려 작년에 24%나 증가했다. 계열사가 지난해 무려 50여개나 늘어 문어발식경영이 여전했다. 이같은 방만경영으로 2백70조원의 빚을 안은 30대 그룹은 금융비용만으로 연간 30조원을 지급하다 보니 작년에 적자를 낸 그룹이 13개나 된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간 정부는 수차례 재벌의 선단식 경영구조 개선을 시도했지만 재계 반발로 번번이 실패했다. 이젠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정부는 상호출자와 지급보증 및 내부거래 축소라는 세 줄기의 재벌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재계도 불만을 앞세우기보다 전문 주력업종 중심의 경영혁신으로 체질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재벌은 부도내지 않는다」는 얘기는 이제 사라진 신화(神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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