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공동체를 위하여]도덕성마비 부패정치인 몰아내야

입력 1997-03-20 09:18수정 2009-09-27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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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청기자] 한보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작년말 당시 신한국당 姜三載(강삼재)사무총장은 『요즘은 과거와 달리 청와대 살림살이가 어려워 당에 내려보내는 돈이 전혀 없다』며 洪仁吉(홍인길)의원의 너름새를 극찬했다. 『홍의원같은 사람이 없다. 대통령총무수석비서관을 그만두고 당으로 온 뒤에도 명절이나 휴가철 등이면 청와대에 올라가 함께 일하던 비서관들을 꼭 챙긴다. 과거와는 거꾸로 된 것이다』 얼마 뒤 한보로부터 대출청탁과 함께 10억원을 받은 혐의로 홍의원이 구속되자 그와 함께 청와대에서 비서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신한국당의 한 지구당위원장은 『홍의원은 참 좋은 사람』이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돈에 관한 한 일반의 윤리의식과는 동떨어진 「정치인적 의식」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4천억원대의 비자금조성 혐의로 구속기소된 盧泰愚(노태우)전대통령도 법정에서 『한번도 뇌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점에 있어선 여야가 특별히 다르지 않다. 수뢰혐의로 어떤 의원이 구속되면 『구속은 당연하다. 뇌물을 받다니…』가 아니라 『안됐다. 털어 먼지 안날 사람 있느냐』는 동정론이 정가의 바닥정서를 이룬다. 정치인들 사이엔 여야를 떠나 일종의 「유대의식」이 형성돼 있는 셈이다. 대형비리의혹사건이 터질 때마다 서울여의도엔 출처불명의 각종 「연루정치인 리스트」가 난무하지만 거명된 정치인들조차 적극적으로 해명하려 하기보다는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며 몸을 사리곤 한다. 정치인들의 「공범의식」마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처럼 「마비된 의식」이 정치인부패 근절이 쉽지 않은 이유중 하나다. 정치인들은 으레 『한국정치가 돈없이 되느냐』며 돈 많이 드는 선거제도나 지구당운영 등 정치환경의 탓으로 돌리고 있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치인들도 더러 있다. 金文洙(김문수·신한국당) 金槿泰(김근태·국민회의)의원 등은 경조사에 화환이나 부조금을 보내지 않는다. 대신 1만원안팎의 향촉이나 앨범을 보내고 있다. 安商守(안상수·신한국당)의원은 아예 결혼식은 축전으로 대체하고 상가에만 1만원상당의 위패를 보낸다. 김문수의원의 한달 평균수입은 세비 후원금 당보조금을 합쳐 2천여만원이고 지출은 인건비 사무실유지비 경조사비 등을 합쳐 1천8백여만원으로 2백만원을 남긴다. 다만 작년 총선이후 다섯차례의 의정보고비(한차례 1천만원)는 은행돈을 빌려 5천만원의 빚이 있다. 「돈 안드는 정치」 실험을 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정계입문후 1년이 채 안된 초선의원. 이들도 일부 지역구민들로부터 『쩨쩨하다』는 비난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아직은 해볼 만하다』고 말한다. 이들의 실험이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또한 이들도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실험은 「돈 안드는 정치」는 제도에 앞서 정치인 각자의 의식에 달려있으며 정치에 돈이 많이 든다는 주장도 핑계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례로 점심 한끼에 1인당 5만∼10만원이 드는 여의도의 몇몇 고급음식점은 정치인들이 주고객이다. 하룻밤 술자리에 수백만원이 드는 서울강남의 몇몇 룸살롱도 정치인들이 단골이다. 심지어 청와대의 젊은 비서관들이나 실세정치인의 보좌관들중 일부도 과소비대열에 가세, 정치비용 증가에 한몫을 하고 있다. 유권자의식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정치인들에 대한 편파사정 표적사정이나 지역주의 등 한국적 정치상황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나 유권자들도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에 대해 너그러운 측면이 있다. 李康斗(이강두·신한국당)의원은 지난92년 총선 때 현금을 살포한 현장이 적발됐음에도 옥중당선됐다. 朴哲彦(박철언·자민련)의원은 현정권 초기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鄭德珍(정덕진)씨 형제로부터 5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으나 작년 총선에서 거뜬히 재기했다. 또 지난 95년 지방선거 때 공천관련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됐던 金仁坤(김인곤·국민회의)의원도 3선의원이 됐다. 지난5일 수원장안구 보궐선거에서 압승한 李台燮(이태섭·자민련)의원은 지난91년 한보의 수서택지특혜분양사건과 관련, 2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고려대법대 金日秀(김일수)교수는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부패에 관련된 적이 있는 정치인이 다시는 정치판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면 저절로 부패정치인은 사라질 것』이라며 『정치풍토 개혁은 결국 유권자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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