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달라지는 생활/직장인 「스토브리그」]

  • 입력 1997년 1월 9일 20시 49분


「李鎔宰기자」 「당신은 3천8백82만1천7백원짜리 인생입니다」. OB맥주의 P부장은 식은땀을 닦으며 잠을 깼다. 『연초부터 재수없는 꿈이로군』 직속상사인 C이사가 꿈속에 나타나 들이민 금액은 P부장이 연말부터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수십차례 계산해본 자신의 올해 연봉 예상액. 지난 94년부터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는 두산그룹의 사내분위기는 1월중순이 되면 뒤숭숭해진다. 상급자와의 담판을 통해 연봉이 결정되는 「스토브리그」가 시작되기 때문. 회사 내정액과 자신의 예상액 맞추기 게임이라도 하듯 분위기는 살얼음판이 된다. 물론 연봉제 시행이후 상사보다 연봉이 많은 직원도 생겨나고 있다. 95년에 연봉제를 도입한 전산시스템 통합업체 동양SHL의 지난해 임금인상률 차등폭은 최고 38%. 지난해 연봉계약에서 최고인상률을 적용받은 S차장은 연봉이 3천만원에서 4천1백여만원으로 뛰었다. 올해도 최상등급 평가를 받으면 5천7백만원. 부장 월급을 훌쩍 뛰어넘는다. M그룹 C부장은 『나보다 연봉이 많은 입사동기에게 더 많은 권한이 부여되고 그를 따르는 부하직원도 많은 것이 현실』이라며 씁쓸해 했다. 연봉제의 기본논리는 현재의 성과와 능력을 중심으로 직원의 가치를 평가하는 시가(時價)주의. 객관적이고 엄정한 평가기준이 관건이 된다. 연봉제를 실시하는 회사에서는 연말연초면 직원의 업무성과를 평가하느라 평상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한 반도체업체의 인사담당 임원은 『부하직원에 대한 평가가 한 가정의 생활수준까지 좌우한다고 생각하면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며 『수십년간 연공서열에 길들여진 상태에서 직원을 20여 항목별로 나눠 점수를 매기고 순위를 정하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성과중심으로 보는 연봉제가 우리 기업 문화에 맞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부작용을 우려해서다. 이른바 인센티브로 능력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근로자들의 업무욕구를 자극해 생산성을 높인다는 논리의 연봉제는 다른 한편으로 인건비 축소와 감원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다분히 있는 「양날의 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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