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단독 리사이틀을 가진 피아니스트 에릭 루. 지난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크레디아 제공 ⓒRowan Lee
1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지난해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인 중국계 미국 피아니스트 에릭 루의 독주회가 열렸다. 루는 2015년 조성진이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당시 4위에 올랐고, 10년 뒤 같은 무대에 다시 도전해 정상에 오른 서사로 주목받은 연주자다. 이번 공연은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갖는 국내 첫 단독 리사이틀이다.
큰 키에 마른 체구인 그는 차분히 인사를 건넨 뒤 건반 앞에 앉아 숨을 골랐다. 첫 곡은 슈만의 ‘숲의 정경’. 9개의 소품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내면의 숲을 거니는 듯한 시적 정취가 짙은 곡이다. 루는 ‘숲의 입구’에서 따뜻하고 소박한 음색을, ‘매복한 사냥꾼’에선 한층 탄력 있는 리듬을 보여줬다. 각 곡의 성격을 과장 없이 드러내면서도, 장면마다 달라지는 숲의 빛과 공기를 섬세하게 펼쳐 보였다.
이어진 쇼팽 ‘폴로네즈 제2번’과 ‘발라드 제4번’도 서정적 분위기를 이어갔다. 살롱풍의 우아함이 묻어나는 ‘폴로네즈 제2번’에서는 빠른 오른손 기교와 3도 화음으로 반복되는 트릴(trill·떤꾸밈음)의 정교함이 돋보였다. 쇼팽 발라드 네 곡 중에서도 난곡으로 꼽히는 ‘발라드 제4번’에선 몽환적인 아르페지오(화음의 각 음을 차례대로 연주하는 기법)로 곡의 절정을 잘 표현했다.
2부의 문을 연 슈베르트 즉흥곡은 장조와 단조를 오가며 화려함과 위태로움이 교차했다. 소박함과 시적인 감수성이 루의 중요한 장점으로 꼽히지만, 이 곡만큼은 화려하고 매끄러운 기교가 돋보였다. 마지막 곡인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에선 낭만주의 피아니즘의 정점으로 꼽히는 작품의 매력을 힘 있게 드러냈다. 특히 후반부의 난해하고 몽환적인 악상을 격정적으로 표현하며, 절제된 흐름 끝에 찾아오는 카타르시스를 선명하게 살려냈다.
힘 있는 소나타로 강한 인상을 남긴 루는 앙코르에서 세 곡을 연달아 연주하며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는 공연장을 지키는 관객들에게 보내는 자장가 같았고,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은 리사이틀의 정취를 오래 가져가라는 그만의 세심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이날 루는 스스로를 과시하기보다 음악의 본목소리를 절제된 모습으로 보여주는 연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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