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ᄒᆞᆫ ᄆᆞ리 기려 줍서”… 제주 방언 쓰는 생택쥐페리 ‘어린 왕자’

  • 동아일보

1인 출판사 ‘이팝’-제주 숲해설가
제주 사투리판 ‘족은 왕자’ 출간
이팝, 2020년부터 지역별 사투리판
“이 땅 모든 말로 ‘양 그려달라’ 할것”

최현애 대표와 제주어 번역가 이지영 씨.
최현애 대표와 제주어 번역가 이지영 씨.
“삼춘양, 양 기려 줍서.(저…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무시거 어떵?(뭐?)”

“양 ᄒᆞᆫ ᄆᆞ리만 기련도렌 ᄒᆞ엿수다.(양 한 마리만 그려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가 주인공에게 그림을 부탁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웃어른을 존칭하는 ‘삼춘’과 ‘~수다’라는 종결어미. 제주 사투리를 썼다.

‘어린 왕자는 왜 서울말만 쓸까?’

이 물음에서 출발해 ‘어린 왕자’를 경상 전라 강원 등 각 지역 방언으로 옮겨 온 1인 출판사가 있다. 이팝출판사가 2020년 처음 출간된 경상도 사투리판 ‘애린 왕자’는 입소문을 타며 5만 부가 팔렸다. 최근에 제주어판 ‘족은 왕자’를 출간한 최현애 대표(43)와 제주어 ‘번역가’ 이지영 씨(39)를 21일 전화로 만났다. ‘족은’은 제주말로 ‘어린’이란 뜻이다.

특히 제주어는 2010년 유네스코 지정 ‘소멸 위기 언어’로 분류된 실정이라, 이번 제주어판은 무게감이 남다르다. 고전을 통해 잊혀지는 지역 언어를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제주어는 현대 국어에선 사라진 아래아(·)와 쌍아래아(ᆢ) 및 중세 어휘가 살아 있어 지역의 문화 정체성 측면뿐 아니라 우리말을 이해하는 데에도 귀중한 자산이다.

이지영 씨는 원래 제주 환상숲곶자왈공원을 경영하는 숲해설가.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지만, 책 한 권을 온전히 제주어로 옮기는 작업은 또 다른 공부가 필요했다. 그는 “요즘 젊은 세대가 문장 전체를 제주어로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저도 할머니들 앞에선 사투리가 많이 나오지만, 또래 친구들과는 ‘헨, 마씨, 헷저, 헷수다’ 같은 종결어미나 몇몇 단어만 섞어 쓴다”고 했다.

사전을 수시로 찾아봤고, 제주어보전회 강좌도 들었다.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여행자’나 ‘탐험’에 해당하는 제주어가 있는지 어르신들에게 묻기도 했다. 문제는 제주어가 동서남북은 물론 마을마다도 조금씩 다르다는 점. 검수받을 때마다 표현이 또 다른 말로 바뀌는 탓에 작업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고민 끝에 기준점을 정했다. 올해 여든일곱이신 이 씨의 외할머니다.

이 씨는 “외할머니는 한글을 못 읽으신다. 게다가 평생 한경면 저지리 수동이란 마을에서만 사셨으니 (표준어의) 영향을 덜 받으신 분”이라고 했다. 같은 동네에 살며 같은 말씨를 듣고 자란 사촌 동생 3명도 작업에 참여했다. 이 씨는 제주어판의 오디오북 낭독도 손수 했다.

“초등학교 2, 4학년인 제 아이들만 해도 사투리를 잘 못 알아들어요. 학교에서 제주어 교육을 받긴 하는데, 서울 사람이 흉내 내는 것처럼 말하더라고요. 우리는 그래도 귀가 트인 세대인데, 다음 세대는 듣는 것조차 힘든 세대가 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로부터 배우고 써 온 말이 사라져 간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사투리 어린 왕자’ 시리즈의 기획자이자 이 책을 경상도 말로 옮긴 경북 포항 토박이 최현애 대표는 “방언은 지역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며 “방언이 표현할 수 있는 정체성을 계속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최 대표는 싱가포르 작가 축제에 참석했다가 독일 틴텐파스 출판사가 진행해 온 ‘어린 왕자’ 지역 언어 번역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 지금까지 240여 개 언어로 번역됐는데, 모스부호는 물론 고대 이집트어, 앵글로색슨 룬 문자 같은 사어(死語)로도 번역됐다. 스코틀랜드 고유어인 ‘스코트어’로 ‘해리포터’ 번역판(‘Harry Potter and the Philosoher‘s Stane’)이 출간되는 등 해외에선 이런 비슷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최 대표는 “평안도와 황해도 함경도까지, 언젠가 이 땅의 모든 말로 어린 왕자가 ‘양 한 마리만 그려 달라’는 부탁을 건네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어린 왕자#지역 방언#이팝출판사#사투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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