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터질 듯한 얇은 막 위를 걷는 소년

  • 동아일보

◇거품(泡)/마쓰이에 마사시 지음·김춘미 옮김/212쪽·1만7000원·비채


2000년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를 보고 ‘뭐 이런 영화가 있지?’ 싶었다. 주인공은 짝사랑하는 고교 선배가 아르바이트하는 서점을 들락거리지만 안타깝게도 선배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영화 내내 그러다가 4월, 비가 오는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그를 알아본다. ‘자! 이제 시작이구나’ 싶은 기대와 달리, 영화는 수줍게 가게를 나간 주인공이 돌아서며 환하게 웃는 장면으로 끝났다. 나중에 이와이 감독을 인터뷰했을 때 “좀 황당했다”라고 했더니, 그는 “설명과 전개, 결말, 이런 ‘만들어내는’ 이야기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내가 고교 시절 누군가를 좋아했을 때 그 마음, 느낌만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라고 했다.

이 책에도 그런 느낌이 담겼다. 억압이 만연한 학교를 떠나 여름 한 철 작은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재즈 카페에서 일하는 한 ‘학교 밖 청소년’의 성장기인데, 그 진통과 성장 과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지 않는다고나 할까.

“고등학교는 냉방이 없는 것은 물론 난방도 없다. 한겨울 아침은 교실에서도 뱉는 숨이 하얘졌다. 문무겸용을 기치로 내건 학교니까 말할 것도 없이 정신 수양의 일환으로 ‘난방은 없다’고 결정한 것인지도 모른다.”(8장에서)

저자는 주인공이 겪는 불안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 불안이 일상이 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잔잔한 재즈가 흐르는 공간에서 외국어에 능한 좀 별난 작은할아버지, 요리 솜씨가 좋은 직원 ‘오카다’ 등 무엇 하나 강요하지 않는 어른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윤곽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세심하게 묘사한다.

사건보다 미세한 감정의 흔들림에 집중하다 보니 읽는 데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서서히 부풀어 오르고, 서서히 얇아지다 언젠가 사라지는 ‘거품’ 같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탄다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얇은 막 위를 걸으며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스릴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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