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영하 14도 강추위.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간 작은 공간은 ‘뻐끔’ 거품을 터트리며 끓고 있는 카레 온기로 따스함이 가득했다.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기분 좋게 찌른다.
12일 서울 관악구 대학동(구 신림9동) ‘참 소중한…’에서 만난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의 이영우 토마스 신부는 “어려운 중장년들이 잠시 쉬면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는 장소”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은 과거 ‘신림동 고시촌’이라 불리던 곳이다. 사법시험이 폐지되면서 젊은이들이 떠난 자리를 지금은 싼 주거지를 찾는 중장년층이 채우고 있다.
“이 동네 70% 정도가 1인 가구인데, 그중 약 40% 정도는 월 10만~20만 원 고시원에 사는 40~60대 중장년층이에요.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고독사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아요.”
고시원 중장년층 돕는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 이영우 신부.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인근 봉천3동 본당에서 사목하던 이 신부는 더 어렵고 도움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2021년 2월 이곳에 작은 쉼터를 열었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데,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무료 점심을 제공한다. 이후 시간엔 비치된 라면을 직접 끓여 먹거나 커피, 차, 과자 등을 먹으며 쉬었다 갈 수 있다.
이 신부는 “청년이나 노인을 위한 정책은 있는데, 의외로 사각지대에 있는 중장년층을 위한 정책은 별로 없다”라며 “삶의 희망을 잃은 고시촌 중장년들이 쉬면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신부가 만든 곳이지만 이곳에서 미사는 한 달에 한 번뿐이다. 이 신부는 “미사 등 전례(가톨릭교회 공적 예배)나 포교를 중심으로 운영하면 신앙이 없는 사람은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다가오기 꺼릴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제지만 쉼터 바로 옆 원룸에 산다. 사제관에 살면 청소, 빨래, 식사 준비 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과 부대끼며 울고 웃고, 지역 사회 운동을 함께하는 ‘진짜’ 생활은 어렵기 때문. 이 신부는 쉼터를 찾는 이들과 함께 산책, 사진 찍기, 영화 보기는 물론 동네 다른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해 여행도 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경제적 어려움은 물론이고 주변과 단절돼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도 많아요. 처음 문을 열었을 땐 경계심에 대부분 서로 말은 고사하고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밥만 먹고 갔지요. 지금은 대화는 물론이고 얼굴이 펴진 게 보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참 소중한…’은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이름이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잊고 삽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엔 그동안 받은 상처와 아픔에 절망해 친구와 가족을 미워하고 늘 자신을 질책하며 사는 분도 많아요. 있는 그대로의 나와 화해하고 자신을 사랑하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살아가야 할 이유도 생긴다고 믿습니다.”
이 신부는 “이름 뒤 말 줄임표(…)는 그 안에 각자 소중한 ‘누군가’, ‘그 무엇’을 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붙였다”라고 했다.
“쉼터에 올 때마다 ‘참 소중한 나 OOO’, ‘참 소중한 OOO씨’ 하는 식으로 뭔가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소중한 대상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어요. 소중한 커피, 소중한 공간 등 사소하지만 그런 대상이 늘어날 때 조금씩 더 행복해지지 않겠습니까.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