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구하는 성황신… 마블 못지않은 ‘무속 무협 세계관’[정보라의 이 책 환상적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10일 01시 40분


◇굿 드라이버/강지영 지음/376쪽·1만6800원·스토리비


“밤마다 사연 있는 귀신을 실어 나르는 운전기사”라는 출판사 책 소개에 홀랑 넘어가서 구입했다. 실제로 읽어보니 이전 칼럼에 썼던 ‘귀매’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세기 말에 폭발적 인기를 얻고 21세기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온 ‘퇴마록’과 장르 관습을 공유하는 작품이었다. ‘무속 무협’ 장르가 현대화하며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굿 드라이버’에는 초월적인 존재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크게 나누면 한때 인간이었다가 죽어서 육신이 사라지고 혼만 남은 귀신과 인간을 넘어선 초월적인 존재인 ‘신’, 즉 성황신, 터주신, 저승사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주인공 유수현은 원한이나 후회, 그리움 등 때문에 이승에 남은 귀신들을 차에 태워 사연을 들어주고 한을 풀 수 있는 장소에 데려다준다. 그 과정에서 원청의 갑질과 하청업체의 설움, 수익만 노리는 비인도적 의료기관, 재개발로 무너지는 공동체, 아동 학대와 청소년 ‘가출팸’ 등 사회 문제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보라 소설가
정보라 소설가
사회 문제와 시대 상황은 더 근본적인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이어진다. ‘무속 무협’ 장르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인간은 살아서는 성황신, 터주신 등 공동체를 지키는 신들과 함께 생명의 질서 속에서 생활하다가 죽고 나면 저승차사에게 이끌려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동양적인 세계관이 규정하는 우주의 질서다. 이 질서를 지키는 존재는 선이며, 그 질서를 어떤 식으로든 해치는 존재는 악이다.

유수현은 신적인 존재들을 도와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려 애쓴다. 한편 악귀는 인간을 죽여 혼을 잡아먹으며 자신의 기운과 세를 불리고 나아가 살아 있는 인간의 혼을 뽑아 생령을 노예로 부리며 ‘귀’를 넘어 신이 되기를 꿈꾼다.

그리하여 악귀가 선한 신들과 싸우는 장면이 등장하게 된다. 악귀는 무자비하게 살상을 저지르는 반면에 선과 질서의 편에 있는 존재들은 역할과 정체성에 맞는 도구를 사용한다. 주인공은 사연 있는 귀신을 알아보게 해주는 향낭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을 돕는 ‘도령’은 부채와 장검을 사용한다. 터주신은 뿔피리를 분다. 저승사자는 명부와 붓을 가지고 있다. 악귀는 선한 신들이 본래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를 빼앗아 자신의 무기로 만들고자 한다.

마블 영화에 나오는 타노스가 우주를 지배하기 위해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는 이유와 같다. 우주의 질서,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구도는 이토록 보편적이다. 외국 영화에서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도구가 우주선과 초능력이기 때문에 열광하고, 한국 소설에서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선한 등장인물이 터주신과 관세음보살이기 때문에 ‘귀신 얘기’로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무속은 마블 코믹스보다 훨씬 오래됐고, 더욱 풍부한 소재와 등장인물을 품고 있다.

주인공이 문예창작학과 교수라는 설정이라 그런지 무속 무협 판타지에 대한 이론적 분석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등장인물(혹은 등장신)들이 명쾌하게 세계관을 말해주기 때문에 그런 분석에 적합한 작품이기도 하다. 더러운 가짜 무속을 물리치기 위해서라도 인간을 보호하고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진짜 무속의 세계관이 흥미롭게 펼쳐지는 ‘굿 드라이버’를 읽어보자. 작품 속 선한 존재들은 죽었든 살았든 사람의 사연을 귀담아들어 주고 마음을 풀어준다. 이런 한국 전통의 공감 능력이 지금 시대에 몹시 필요하다.

#귀신#무속 무협#초월적 존재#판타지#한국 전통#선과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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