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개최된 전조선 웅변대회 - 2천여 명의 청중이 운집, 연사의 열변과 장내의 긴장
평양청년회 주최, 조선일보 및 본사(동아일보) 평양지국 후원으로 제1회 전조선 청년·학생 현상 웅변대회의 첫날 일정이 예정대로 13일 밤 평양 설암리 천도교당에서 개최되었다.
평양에서 처음 열린 대회였던 만큼, 시민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초저녁부터 군중이 몰려들어 약 2천여 명이 운집하며 대성황을 이루었다. 오후 7시 30분경, 평양청년회장 정두현 씨의 개회사로 웅변대회의 막이 올랐다.
첫 연사로 용강 기독청년 대표 이두록 군이 ‘나는 맹수 같은 청년이 되자’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그는 “우리 청년들은 비굴한 존재가 되지 말고, 천병만마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사자 같은 청년이 되자”는 요지의 열변을 토했다.
이어 광성고보 기독청년 대표 김대성 군이 ‘우리의 환경’이라는 주제로 연단에 올랐다. 그는 “모든 것은 환경에 지배된다. 지금 우리의 환경을 보라. 안으로 들어와서는 살 수 없고, 밖으로 나가서도 활동할 여지가 없다”고 하며, 조선의 역경과 영토 문제를 언급했다. 특히 “조상이 물려준 국토를 팔아먹지 말자”라고 강조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다음으로 평양 불교청년회 대표 김광수 군이 ‘살길을 찾자’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그는 “사람은 먹고 살아야 한다. 배부른 세상을 원하느냐, 배고픈 세상을 원하느냐?”라고 질문하며, 국토를 팔아먹고 혹독한 북풍한설 속에서 살아가는 조선인의 현실을 꼬집었다. 또한 재해민 문제를 거론하며 “죽음의 공포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 후, 민족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금전, 지식, 단결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금주·금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잠시 독창 공연이 있은 후, 숭대 기독청년회 장애경은 ‘우리 사회의 활로’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그는 “나는 평등주의 사회조직을 원하며, 모든 사람이 자기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길 바란다. 도리가 없는 사회는 멸망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조선의 수많은 빈민의 참상을 이야기한 후, 천도교 신도의 준동(蠢動)을 비판하고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광성고보 학우회 대표 곽주홍 군이 ‘역경에 분투하자’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그는 “우리에게는 건강한 몸과 정신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 노력해 진보와 발전을 이루자”고 주장했지만, 일부 청중들의 야유와 냉소적인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의주 제2교회 청년회 대표 이예용 군은 ‘오직 참이 있어야 한다’라는 주제로 연설하며, “우리는 오직 진실을 추구하고 허위를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개혁가 러셀의 말을 인용하며 기독교적 이상을 설파했다.
다음으로 평양 동명학우회 대표 이덕산 군이 연단에 올라 ‘새봄을 맞이한 우리’라는 주제로 현 사회 조직의 불합리성과 계급투쟁을 논했으나, 논리적인 요지를 잡기 어려웠고 조롱과 야유가 끊이지 않았다.
이어 평양 유정 엡웟청년회 대표 박기석 군이 ‘조선 청년의 사명’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그는 “조선의 모든 현실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청년의 사명이 막중하다. 무산 계층의 비참한 현실을 보다 나은 환경으로 이끄는 것이 청년의 임무이다. 형제들이여, 미래를 낙관하자”고 주장하며 생활문화 향상에 대해 역설했다.
잠시 음악 연주가 있은 후, 성천청년회 김병욱 군이 ‘사람의 근본 문제’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그는 “사람이란 원칙적으로 평등하다. 그런데 오늘 밤 연설자들은 ‘내 민족, 내 민족’이라고만 외치고 있다. 그러면 세계 16억 인구 중 조선 민족만 잘살겠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하며,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를 주장했다. 또한 “사람의 근본 문제는 교육에 있다”라고 결론지었다.
다음으로 평양 경창문외 예수교 청년회 대표 이홍현 군이 ‘우리의 활로 실천’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그는 “국제연맹이 우리 민족을 구해줄 것인가? 아니면 코쟁이 백인들이 우리를 구해줄 것인가?”라고 묻고, 절망적 현실 속에서도 유일한 희망은 실천뿐이라며 실천주의를 역설했다.
이어 평양 연화동 청년회 대표 오희수 군이 ‘우리 사회 단결의 필요’라는 주제로 연설하며, “우리의 급선무는 경제, 교육, 사상보다도 단결이다. 우리 2천만 민족이 단결만 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인의 단결력 부족을 개탄하며 연설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보성전문 학생친목회 대표 주병서 군이 ‘조선의 현상과 청년의 사명’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그는 “청년은 사회의 모든 현실을 파괴할 수도, 건설할 수도 있다. 러시아 제국도 청년들에게 주의 사상이 스며들자 붕괴되었다”고 주장하며, 프랑스 혁명을 예로 들어 조선 청년의 사명을 열변했다.
이처럼 뜨거운 열기 속에서 첫날의 웅변대회가 마무리되었다.
1925년 2월 16일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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