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모들, 재산 상속보다 자녀들과 여행을 원해[전승훈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4일 18시 06분


상속 대신 여행?

요즘 어르신들은 자녀에게 재산을 상속을 남기기 보다는 추억을 남기는 여행을 더 선호한다는 트렌드가 나왔습니다. 온라인 여행기업 부킹닷컴(Booking.com)이 ‘2025년 주목할 만할 9대 여행 트렌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였는데요.

영어로는 ‘SKI’(Spending Kids‘ Inheritance)라고 한답니다. ’자녀에게 줄 유산을 써버린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상속을 남기기 보다는 그 돈을 쓴다는 것인데요. 어디에 쓸까요? 바로 여행입니다. 자녀와 함께 평생 기억에 남을 여행을 떠나는 것이죠.

이 트렌드가 실감났던 것은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올해 1월 초에 베트남 다낭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는데요. 팔순이 넘으신 장모님께서 지난해 “내가 비행기와 호텔비용을 댈테니 다같이 여행가자”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장모님과 딸들, 사위들, 손주 등 처갓집 3가족 모두 8명이 함께 베트남 다낭을 가자고 한 것이죠. 솔직히 지난 몇년 동안 자녀 대입 준비, 직장생활 등에 바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갈 생각도 못한 것도 사실인데요.

장인 어른이 돌아가신 후 지방에서 적적하게 홀로 사셨던 장모님께서 비행기 티켓과 호텔비용을 대겠다고 하시니, 가족들은 모두들 부담없이 손을 번쩍 들고 즐겁게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부모님들은 대부분 ‘자식들에게 재산 물려주면 뭐합니까, 살아계실 때 즐기시고 다 쓰고 가시라’고 말씀을 드려도 그러지 못하십니다. 선물로 사드린 가방이나 옷도 장롱 속에 고이 간직만 하고 들고 다니시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부모님께서 선뜻 가족 여행 기회를 마련해주신다면, 자식들은 기꺼이 함께 따라가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여행은 생각한대로 흘러가는 법은 없습니다. 1월 초에 떠나려는데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기 사고라는 비극이 벌어진 거죠. 우리도 마침 제주항공을 예약했는데, 취소할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비행기 좌석은 훨씬 할인된 가격이 됐고, 베트남 해산물 요리와 마사지를 충분히 즐기며 온 가족들이 함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담긴 여행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부킹닷컴 설문조사 결과 한국인 응답자 50%와 글로벌 응답자 46%는 2025년에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대신 그 돈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 트렌드는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를 넘어 고령 세대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세대, 특히 자녀나 손주들의 여행 비용을 대신 지불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66%, 글로벌 58%는 성인이 된 이후 본인의 부모로부터 여행 비용 일부 또는 전부를 지원받은 경험이 있다고 하네요. 또한 향후 여행 예약 시 자녀(한국 89%. 글로벌 80%)와 손주(한국 87%, 글로벌 78%)를 대신해 여행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베이비붐 세대의 비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액티브 시니어의 모험 여행

두번째로 눈에 띄는 2025년 주목할만한 여행트렌드는 ‘액티브 시니어의 모험 여행’입니다. 요즘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는 어떤 세대보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여행하는 ‘액티브 시니어’로 불리는데요. 그들은 은퇴 후 평화롭고 여유로운 생활 대신, 스릴 넘치는 모험을 떠나는 새로운 여행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부킹닷컴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 여행객의 약 1/4(한국 19%, 글로벌 23%)은 모험을 동반하는 휴가에 관심을 보였는데요. 특히, 한국인 여행객 50%와 글로벌 여행객 23%는 익숙하고 편안한 삶을 벗어나 젊은 시절의 자유분방함을 되찾고 싶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33개 조사국 중 한국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이 트렌드가 와 닿았던 것은 바로 저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기자도 어느덧 50대 중반인데요. 50살이 넘어서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기 시작해서 그동안 동해, 남해, 제주도, 울릉도 등 국내 바다를 탐험하고, 필리핀 보홀과 세부 등 해외 다이빙도 즐기고 있습니다.

2월 중순에는 대학친구들 20여 명과 함께 태국 남부 안다만해에 있는 푸켓 씨밀란 제도에서 ‘리브어보드(Liveaboard)’ 다이빙 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제 100번째 다이빙 로그를 기념하는 여행이기도 한데요. ‘리브 어 보드’란 배 안에서 3박4일간 먹고, 자고하면서 육지에는 내리지 않은채 배가 포인트를 옮겨가며 다이빙을 하는 스쿠버 여행입니다. 고래상어와 만타가오리, 산호 등 안다만해의 수중 생물과 함께 헤엄치며, 바위 한 가운데에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모습을 보는 여행은 기대가 되는군요. 함께 가는 친구들 모두 50대 중반이라는 점도 특이합니다. 해외에 스쿠버 여행을 가면 유럽에서 온 60~70대의 다이버들도 많습니다.

부킹닷컴 조사에서도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극한의 체험을 즐기려는 베이비붐 세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동굴 다이빙(한국 12%, 글로벌 10%), 남극 캠핑(한국 14%, 글로벌 9%) 심지어 화산 보딩(한국 12%, 글로벌 8%)에까지 관심을 보인 이들은 ‘모험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정신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은퇴 이후 여행은 이제 새로운 지평으로 진화하고 있는 듯합니다.

● 남성 웰니스 여행

그동안 ‘웰빙과 웰니스 여행’은 여성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요. 2025년에는 ‘남성 웰니스 여행’도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를 전망입니다. 남성들 사이에서 정신 건강과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인식이 증가했기 때문이죠. 여성들은 집안 일이나 직장 일에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친구들과 함께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요. 남성들은 웬만한 스트레스는 참고, 가슴에 꾹꾹 눌러가며 휴가도 없이 직장에 출근하곤 했습니다. 대신 퇴근 후 소주를 마시는 정도로 스트레스를 풀고, 더욱 더 건강을 해치곤 했습니다. ​



여자들끼리는 여행을 가면 그러려니 하면서, 남자들끼리 여행을 떠나면 뭔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곤 했는데요. 둘이 사귀나? 아니면 어디가서 못된 짓하러 가는 거 아니야? 하는 시각입니다.

그런데 부킹닷컴 조사결과 요즘엔 여행에서도 남성들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며 휴식과 재충전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남성 여행객들은 일상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해소(한국 44%, 글로벌 29%)하고, 휴식과 재충전(한국 50%, 글로벌 30%)을 위해 여행을 떠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이와 함께 37%의 한국인 여행객과 47%의 글로벌 여행객이 남성 친구에게 ‘남자들끼리만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Z세대(한국 53%, 글로벌 65%)와 밀레니얼 세대(한국 39%, 글로벌 58%)에서는 이 비율이 더 높았다고 하네요.

●야간 관광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과 급격한 체감온도 상승은 여행 트렌드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2025년에는 여행객들이 낮보다는 밤 시간 대에 여행을 선호할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네요. 조사에 따르면, 여행객의 약 절반이 밤에 관광하거나(한국 48%, 글로벌 54%), 햇볕이 강하지 않은 저녁이나 이른 아침에 활동할 계획(한국 59%, 글로벌 57%)이라고 답했습니다.



또한 여행객들은 천체 관측을 즐기기 위해 밤 여행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응답자의 약 2/3(한국 69%, 글로벌 62%)가 아름다운 밤하늘을 경험할 수 있는 여행지에 방문하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별을 감상(한국 75%, 글로벌 72%)하거나 별자리를 관찰하는 여행(한국 67%, 글로벌 57%)을 계획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저도 밤하늘 별이 잘 보이는 여행지를 갔을 때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밤하늘 별사진을 찍곤합니다. 요즘 갤럭시 스마트폰은 천체사진 모드가 있어 초보자도 쉽게 별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공항에서부터 시작되는 여행

요즘 여행의 시작은 공항입니다. 요즘엔 해외여행을 갈 때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한다는 공식은 깨졌습니다. 좀더 일찍 도착해 여유롭게 공항을 즐기는 것이죠. 여행이란 것은 출발할 때가 가장 즐겁고 기대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요즘 MZ세대들은 라운지에서 미리 식사도 하고, 와인도 마시고, 태블릿PC로 영화도 보면서 여행의 시작을 오랫동안 즐깁니다.

특히 비즈니스 좌석을 타는 사람들은 라운지도 함께 이용할 수 있지요. 이들은 비행기를 타고서 바로 누워서 잠을 잡니다. 그리고 식사시간에 깨우지 말라고 승무원에게 부탁을 하죠. 미리 라운지에서 식사와 와인까지 다 충분히 마쳤기 때문에, 비즈니스 석에 탄 승객들은 그대로 누워서 몇 시간을 푹 자는 겁니다. 그리고 도착할 때 즈음에 일어나서 배고프면 뭔가를 먹는 식이죠.



그래서 요즘엔 공항 라운지 이용권을 부가서비스로 주는 신용카드도 인기입니다. 기왕이면 신용카드 사용 포인트를 공항에서 쓰면서, 남들은 딱딱하고 좁은 의자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 라운지에서 여유롭게 와인과 커피를 마시면서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죠. 특히 외국에서 장시간 환승할 때는 라운지 이용권이 무척 중요합니다.

부킹닷컴 조사에서도 한국인 여행객의 70%와 글로벌 여행객의 60%는 수면 포드와 스파 등 독특한 경험이나 시설을 제공하는 공항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있습니다. 이들은 공항을 기준으로 여행지를 고르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이 41%(한국), 43%(글로벌)에 달했습니다. 이는 공항이 단순히 출발지에 그치지 않고, 여행의 중요한 경험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의미하죠.

또 한국인 응답자의 78%와 글로벌 응답자 60%)가 비행 전에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이 있으면 더 신나고 스트레스 없는 여행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여행은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부킹닷컴은 이외에도 △장수 웰니스 여행 △인공지능(AI) 기술을 더한 책임감 있는 여행 △빈티지 쇼핑 투어 △포용적 여행 등을 키워드로 꼽았습니다.



그 중에 인상깊은 것은 “덜 알려진 여행지를 방문할 때 소셜 미디어에 여행지를 태그 하지 않음으로써 과잉 관광을 방지하겠다”고 응답한 여행객 비율이 44%(한국과 글로벌 동일)로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여행지 보존을 위한 책임감있는 행동이라는 평가인데요. ‘좋은 곳은 나만 알고 있겠다’ ‘나만의 힐링 포인트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게 싫다’는 생각의 반영이기도 할 겁니다.

​부킹닷컴은 향후 12~24개월 이내에 출장 또는 여가 목적으로 여행할 계획이 있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2025년 주목해야 할 여행 트렌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설문조사 응답자는 33개 국가 총 2만7713명(한국 1004명)이 참여했습니다. 조사는 지난해 7~8월에 온라인을 통해 진행됐다고 하네요.

아르얀 다이크 부킹닷컴 부사장 및 CMO는 “2025년 여행트렌드는 여행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넘어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술에 상상력이 더해져 여행객들은 자신만의 여정을 더 쉽게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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