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비참함 생생히 담은 판화집
유족들이 보관해온 미공개 에디션
올초 특별전 인연으로 논의 시작
佛정부 9개월만에 반출 승인
프랑스 화가 조르주 루오(1871∼1958)의 대표작인 판화집 ‘미제레레’를 전남도립미술관이 소장하게 됐다. 19일 전남도립미술관에 따르면 미제레레는 올해 2월부터 소장 논의를 시작해 9개월간 프랑스 정부의 문화재 반출 심의를 거친 끝에 13일 미술관에 도착했다.
미제레레는 총 58점으로 구성된 판화집으로, 지난해 10월 6일부터 올해 1월 29일까지 미술관에서 열린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전에 전시됐다. 미술관이 구매한 미제레레는 루오가 살아 있을 때 직접 인쇄한 425개 에디션 중 16번째로 찍은 판화집으로, 루오 유족이 대대로 소장한 미공개 비매품이었다. 루오의 장손인 베르트랑 르 당테크 조르주 루오 재단 회장이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이 된다는 취지에 공감해 작품을 보냈다고 한다. 미제레레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영국 테이트미술관 등 해외 주요 미술관들이 소장하고 있다.
루오가 제1차 세계대전 중 그린 드로잉을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요청으로 동판화로 옮긴 미제레레는 작품성은 물론이고 출간에 얽힌 사연으로 유명하다. 작품 제목인 미제레레는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로, 전쟁의 비참함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담았다. 정웅모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미술담당 신부는 “전쟁에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무수한 사람이 생명을 잃은 참혹한 현실에서 외친 절규이자 기도”라고 설명했다.
루오가 전체 판화집을 완성한 것은 1927년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 20여 년이 걸렸다. 특히 볼라르가 갑작스레 사망한 후 유족이 작품을 돌려주려 하지 않아 소송을 했다. 루오는 1948년 발표된 판화집 서문에 “볼라르의 죽음, 독일의 점령, 소송으로 출간이 지연됐다. 나의 낙천적 성향에도 힘든 시간이었다. 내가 지상에서 사라지기 전 빛을 보게 돼 기쁘다”고 썼다.
전남도립미술관 루오전을 관람한 소설가 조정래는 미제레레를 보고 “루오는 인간이 가진 고통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라고 했다.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RM은 전시를 본 후 미제레레에 실린 작품 ‘마음이 고결할수록 목덜미는 덜 뻣뻣하다’의 제목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미제레레가 미술관 소장품이 되면서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기 수월하게 됐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은 “미제레레는 미술사의 중요 작품이며 이중섭이 루오의 작품에 찬사를 보냈고 손상기는 비평가들에게 ‘동방의 루오’라고 불리는 등 루오는 한국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며 “내년 중 미제레레를 선보이는 전시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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