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것 같아”

  • 동아일보

‘K팝’ 듣는 美참전용사 손녀 개벌러씨
‘노병’ 이근엽 前교수 자택 찾아 환담
“6·25 다른 시점에서 들으니 신기
역사 가르쳐야 한미동맹 견고해져”

지난달 31일 6·25 참전용사인 이근엽 전 연세대 교수(왼쪽)의 자택에서 이 전 교수와 미군 참전용사 프랭크 개벌러 씨의 외손녀인 이바 개벌러 씨가 두 손을 맞잡고 미소 짓고 있다. 이바 씨는 현재 한국 정부 장학금을 받으며 고려대에 재학 중이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난달 31일 6·25 참전용사인 이근엽 전 연세대 교수(왼쪽)의 자택에서 이 전 교수와 미군 참전용사 프랭크 개벌러 씨의 외손녀인 이바 개벌러 씨가 두 손을 맞잡고 미소 짓고 있다. 이바 씨는 현재 한국 정부 장학금을 받으며 고려대에 재학 중이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우리 외할아버지랑 똑같으세요.”

밝은 갈색 머리, 파란 눈동자의 20대 대학생이 눈물을 왈칵 쏟았다. 이날 처음 만난 90대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때였다. 대학생은 미국인 이바 개벌러 씨(23·여), 할아버지는 6·25전쟁 참전 용사인 이근엽 전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93)다.

이 전 교수는 “학생 얼굴을 보니 학생의 할아버지 얼굴이 상상된다”며 “학생과 나는 친손녀와 할아버지 같다”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개벌러 씨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다시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정말 좋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 전 교수는 1950년 말 고향 함경남도 함흥에서 입대해 6·25전쟁 당시 소총수로 전장에 투입됐다. 1953년 7월 14일 최전방이었던 강원 화천 백암산 일대에서 포탄 파편을 맞는 등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인 개벌러 씨는 2018년 고려대에 입학해 현재 언어학과 4학년으로 재학 중이다. 개벌러 씨는 6·25전쟁 때 참전한 미군 프랭크 개벌러 씨(1930∼2020)의 외손녀다.

지난달 31일 두 사람이 만났다. 한미동맹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두 사람이 서울 동작구의 이 전 교수 자택에서 자리를 함께한 것. 이 전 교수는 개벌러 씨를 처음 만나 영어로 인사를 건넸고, 개벌러 씨는 한국어로 화답했다. 개벌러 씨는 “할아버지는 미 해군 무전병으로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등에서 활약했다”며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꺼냈다. 이 전 교수는 “내가 1950년 12월에 입대했으니 외할아버지는 내 선배”라며 웃었다.

개벌러 씨는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듯 “진지 교대를 할 때 미군을 만나 무슨 얘기를 했느냐” “영어로 대화하니 미군들이 고마워했느냐” 등 여러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외할아버지에게서만 듣던 6·25전쟁 이야기를 다른 시점에서 들으니 신기하다”고도 했다.

‘사탕’도 대화의 매개체가 됐다. 이 전 교수는 “미군과 진지 교대를 하기 전 미군 벙커에 들어가 보면 사탕이 많았다”며 “이걸 동료들에게 가져다주면 그렇게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개벌러 씨는 “외할아버지가 생전 한국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면 정말 좋아했다는 얘기를 자주 하셨다”고 했다.

6·25전쟁에 대한 얘기를 듣던 소녀는 이제 K팝과 K콘텐츠에 열광하는 대학생으로 성장했다. 개벌러 씨는 국가보훈처와 한국전쟁기념재단이 지급하는 장학금도 받고 있다. 개벌러 씨는 말했다. “이 전 교수님처럼 6·25전쟁을 생생하게 증언해줄 수 있는 분들이 미국에 가서 미국 학생들에게 얘기해줄 기회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미국 역사 수업에서 6·25전쟁에 대해 더 많이 가르쳤으면 하고요. 그래야 한미동맹이 더 견고해지지 않을까요?”

#6·25#美참전용사 손녀#이근엽 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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