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지 않은 ‘킹받는’ 캐릭터… 일상 유머에 MZ세대 열광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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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부터 일반인까지 제작 나서
신입 직원-알바생 등 캐릭터 인기
시청자, 댓글로 소통하며 호감 표현
“경쟁에 지친 젊은층, 자조적 성향”

현실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해 공감과 비웃음을 동시에 사는 ‘킹받는’ 캐릭터들. 위쪽부터 ‘MZ오피스’에서 꼰대 상사와 맞서는 ‘맑은 눈의 광인’ 아영 씨. 친정 엄마에게 아들을 맡겨두고 근교 카페에 놀러간 ‘신도시 아재들’의 서준맘. 앙칼진 말투와 서툰 화장으로 2000년대 중고교 일진을 따라 한 ‘다큐 황은정’. 유튜브 화면 캡처
현실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해 공감과 비웃음을 동시에 사는 ‘킹받는’ 캐릭터들. 위쪽부터 ‘MZ오피스’에서 꼰대 상사와 맞서는 ‘맑은 눈의 광인’ 아영 씨. 친정 엄마에게 아들을 맡겨두고 근교 카페에 놀러간 ‘신도시 아재들’의 서준맘. 앙칼진 말투와 서툰 화장으로 2000년대 중고교 일진을 따라 한 ‘다큐 황은정’. 유튜브 화면 캡처
유튜브 등에서 쇼트폼 콘텐츠를 중심으로 ‘킹받는’ 캐릭터들의 인기가 뜨겁다. ‘킹받다’는 ‘열받다’에 ‘킹(King)’을 넣어 만든 말로 본래는 ‘엄청 화가 났다’는 의미였지만 최근 들어 짜증과 호감을 함께 내포한 의미로 확장됐다. 2, 3년 전 ‘카페 사장 최준’ 등 일부 연예인의 부캐(자신의 본모습이 아닌 제2의 자아 캐릭터) 콘텐츠가 열풍을 일으킨 데 이어 최근 개그맨 출신부터 일반인까지 다양한 창작자들이 킹받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킹받는 캐릭터들은 공통적으로 극사실주의 문법을 구사한다. 현실에선 비호감으로 인식될 요소를 가졌지만, 웃음을 유발하는 상황에 이를 적절히 녹여 ‘밉지 않은 캐릭터’로 그려낸다.

SNL코리아 시즌3 ‘MZ오피스’는 MZ세대 직원들이 회사에서 상사, 동료와 빚는 갈등을 우스꽝스럽게 담아내 화제가 됐다. MZ세대를 대표하는 ‘맑은 눈의 광인’ 신입 직원 아영은 사무실에서 이어폰을 낀 채 일한다. 아영은 일부 꼰대 상사들의 말 중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고 대답해 웃음과 빈축을 동시에 산다.

유튜브 채널 ‘사내뷰공업’은 직종별 알바생의 ‘킹받는’ 고충을 그리는가 하면, 두발 검사 때 앙칼진 목소리로 선생님에게 대드는 2000년대 일진을 재현해 호응을 얻었다. 빵집 알바 편에서 알바생이 ‘이 안에 뭐가 있게 샐러드 듬뿍 고로케’ ‘오븐에 노릇 핏자핏자 피자빵’ 등 복잡한 빵 이름을 모두 외워야 하는 고충을 그리는 식이다. 사내뷰공업 채널을 운영하는 파괴연구소 관계자는 “출연자이자 제작자인 김소정 PD 본인의 경험과 구독자 제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든다”며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는 시청자들 기억 저편에서부터 공감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맘카페에서 인기인 ‘신도시 아재들’의 ‘서준맘’은 신도시에 사는 ‘젊줌마’(젊은 아줌마)다. 몸에 딱 달라붙는 롱 원피스, 로고가 크게 새겨진 명품 크로스백 등 인터넷에서 이른바 ‘신도시 미시 패션’이라 불리는 옷차림이 트레이드마크다. 서준맘은 아들을 비싼 영어유치원에 보내려 애쓰고 화려한 네일아트를 즐기며, 친한 동네 언니들에게 알짜배기 정보를 공유하는 다정한 푼수 캐릭터다. 맘카페 회원들은 “딱 우리 동네 엄마들 스타일” “내가 바로 서준맘”이라며 기존 ‘맘충’에 담겼던 혐오를 유쾌하게 탈바꿈시킨다.

‘신도시 아재들’, ‘피식쇼’ 채널을 보유한 메타코미디의 정영준 대표는 “MZ세대들이 경험했을 법한 일상적 감정을 파고들려 한다”며 “비슷한 상황에서 느꼈을 슬픔,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시켜 스스로를 놀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시청자들은 제작진과 댓글을 통해 소통하며 킹받는 캐릭터에 호감을 표한다. 킹받는 캐릭터들 특유의 자조적 개그와 ‘힘 뺀’ 느낌이 지쳐 있는 동시대 젊은층을 매료한 것으로 풀이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열심히 사는 걸 높게 평가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현재 2030세대는 만성적인 정체 앞에서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이 오히려 좌절로 이어지는 경험을 적잖게 하고 있다”며 “내면 깊이 자리 잡은 자조적, 냉소적 태도가 킹받는 콘텐츠에 열광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층이 동영상 콘텐츠를 보는 스마트폰은 개인화된 도구여서 아주 일상적인 소재를 다룬 유머에 끌리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킹받는 캐릭터#일상 유머#m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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