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과 상실의 끝에서, 우린 무엇을 원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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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에서 시베리아로 가는 순례자를 지켜보는 기후탐사선의 기후연구원 AA(이은정·왼쪽)와 BB(정슬기). 국립극단 제공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에서 시베리아로 가는 순례자를 지켜보는 기후탐사선의 기후연구원 AA(이은정·왼쪽)와 BB(정슬기). 국립극단 제공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매년 18만여 명이 찾는다. 800km가 넘는 길의 끝에는 예수의 제자 성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성당이 있다. 순례자들은 그곳에서 구원을 얻을 거라 생각한다. 산티아고의 반대 방향인 극동 시베리아로 순례를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엇을 원하는 사람일까.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27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은 시베리아를 향해 걷는 순례자 ‘그’(전선우)를 관찰하는 오호츠크 해상의 기후탐사선 소속 연구원 AA(이은정)와 BB(정슬기)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정진새 연출가가 희곡을 썼다. 시대적 배경은 ‘2020년 그 이후 언젠가’. 가상과 실재가 뒤섞여 순례도 온라인으로 하는 시대에 오프라인 시베리아 순례에 오른 그가 등장하며 극이 시작된다.

극은 촘촘한 기승전결을 갖춘 서사라기보단 두 연구원의 대화에 작가의 생각이 여기저기 담기는 형식이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사람들의 대화로 구성된 2인극이라는 점에서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쓴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와 닮았다. ‘극동…’은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겪은 인류의 혼란을 담았다. 재난 속에서 세계는 점멸하게 돼 있다. 이를 은유하는 연극적 장치로 장내는 50회 이상 암전된다.

시베리아에 가까워질수록 순례자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혼란과 상실, 고립의 끝에서 순례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정 연출가는 “휴머니즘의 재확인,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극을 마무리하고 싶진 않았다.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석 3만5000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연극#혼란과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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