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탄은 자연 그 자체” 30여년간 목탄 드로잉 이어온 허윤희 작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6일 13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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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오두막(Entfernung-Hütte), 2001
떠남-오두막(Entfernung-Hütte), 2001
30여 년 전, 예술가를 결심한 허윤희 작가(54)가 선택한 재료는 목탄이었다. 그는 목탄을 긴 나무 막대기에 묶어 벽면에 그림을 그리고 지우는 퍼포먼스를 진행해왔다. 시꺼멓기만 한 것, 어차피 지워 사라지는 것을 그는 왜 그릴까.

“목탄은 나무를 태운 것으로 자연 그 자체다. 목탄 벽화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 영원하지 않는 우리 삶과 같다. 현재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최근 만난 허 작가의 이러한 설명은 ‘9 리터의 먼지와 오두막’ 展에서 좀 더 명확해진다. 서울 마포구 신생 갤러리인 A.P.23에서 22일까지 진행하는 이 전시는 허 작가의 작품세계를 되짚는 아카이브 자료 기반 전시다. 전시는 생태학적 관점으로 그의 회화, 드로잉 등 총 27점을 구성했다.

<관(棺)집>(2001)나무, 돌, 시멘트, Galan, France
<관(棺)집>(2001)나무, 돌, 시멘트, Galan, France

전시장 초입은 역시 그를 대표하는 목탄 회화와 벽화 영상이 자리한다. 5개의 퍼포먼스를 묶은 영상을 따라 전시장 안쪽으로 나아가다 보면 조금은 다른 작업들이 눈에 띈다. 그중 국내 전시에서 처음 소개되는 ‘관(棺)집’(2001년)은 작가가 프랑스 남서부 시골에서 두 달 동안 자갈과 통나무를 사용해 집을 만들고 사진으로 남긴 것이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가는 크기다. 허 작가는 “삶을 하루 단위로 쪼개어 생각하면, 저녁에는 관에 들어가 죽음을 맞이하고 아침에는 새 생명을 얻는다”며 “좀 더 살아있는 것을 의식하며 살게 된다”고 했다.

<관(棺)집>(2001), 나무, 돌, 시멘트, Galan, France
<관(棺)집>(2001), 나무, 돌, 시멘트, Galan, France

작가가 자연을 얼마나 섬세히 관찰하고 있었는지는 ‘돗토리의 기억’ 시리즈(2010년)에서도 드러난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일본에서 레지던시에 머문 시절 구한 쌀 봉투에 곡식을 넣고, 봉투 바깥쪽에 나뭇잎과 꽃 등을 그린 작품이다. 허 작가는 “쌀은 아시아인에게 기본적인 요소다. 그 쌀이 비닐봉지가 아닌 종이에 담겨있다. 그 아날로그적이고 전통적인 것들이 따뜻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돗토리의 기억> 시리즈, 쌀 봉투에 아크릴, 곡식, 36 x 18 cm, 2010
<돗토리의 기억> 시리즈, 쌀 봉투에 아크릴, 곡식, 36 x 18 cm, 2010

그는 “생태주의 미술가라 생각했기 보다는…. 단지 자연을 좋아하는 작가”라며 웃었지만 허 작가의 지향점은 초기작부터 엿보인다. 출품작 중 가장 구작인 ‘윤희 그림’(1996년)를 보면 알 수 있다. 1995년 자유를 꿈꾸며 독일 유학을 갔을 시절, 독일어도 모르던 작가는 헌책방에서 구한 책 ‘NOA NOA’(1901년) 위에 그림일기를 그렸다. 이 책의 모퉁이에 적힌 문구는 “자연은 우리에게 생성, 소멸, 순환을 가르쳐준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적인 삶이 자연스럽고 인간적”이라는 지금 작가의 말과 맥을 함께 한다.

“해가 움직인다. 피처럼 붉은 해가 움직인다. 젊음과 힘을 품고서 작열한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음을 미리 안다. 달은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희 그림 시리즈 중 일부, 사진, 36x28cm, 2022
윤희 그림 시리즈 중 일부, 사진, 36x28cm, 2022

박윤조 A.P.23 디렉터는 “한국 생태미술은 장기간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예술과 삶을 성찰해온 작가들이 있다는 특성이 있다. 허윤희의 작업은 자연의 재생력에 대한 희망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면에서 개관전으로 소개하기 적합했다”며 “앞으로도 A.P.23은 생태주의 중견 작가들을 많이 소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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