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오겜’, 한강변 ‘종이의 집’… MZ 잡으러 화면 밖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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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콘텐츠 기업들, 체험인증-공유로 팬덤 확보
넷플릭스-토종 OTT-방송사… 방송에 나오는 게임기회 제공 등
오프라인 ‘체험형 마케팅’ 나서… “플랫폼 충성도 강화하는 전략”
‘힙’한 것 찾는 MZ세대 놀이문화… SNS 전파하는 ‘경험소비’로 정착


#2일 서울 서초구 한강 세빛섬 한복판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카메라가 향한 곳은 넷플릭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 나오는 강도단의 모습을 재현한 강도상. 하회탈을 쓰고 붉은색 점프슈트를 입은 5m 높이의 강도상은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듯했다. 강도상 위에 올라가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거나, 함께 온 친구와 강도상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달 넷플릭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속 강도단 복장을 한 이들이 서울 중국 도심을 달리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이달 넷플릭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속 강도단 복장을 한 이들이 서울 중국 도심을 달리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같은 날 서울 한강 잠수교에서는 강도단 20여 명이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드라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을 선보이며 진행한 ‘4조 km 러닝 챌린지’의 참가자들. 넷플릭스는 미션을 신청한 뒤 4km 완주를 인증한 참가자 600명에게 강도단이 입고 나오는 빨간색 점프슈트를 증정했다.

서울 강남구 ‘일상비일상‘의 틈에 15일 마련된 ‘뿅뿅 지구오락실‘ 체험관을 찾은 이들이 직원과 게임을 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서울 강남구 ‘일상비일상‘의 틈에 15일 마련된 ‘뿅뿅 지구오락실‘ 체험관을 찾은 이들이 직원과 게임을 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15일 오후 2시 LG유플러스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복합문화공간 ‘일상비일상의 틈’ 1층은 평일 낮인데도 CJ ENM 나영석 PD의 tvN 예능 프로그램 ‘뿅뿅 지구오락실’의 팝업 전시를 찾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직원과 함께 “뿅뿅 지구오락실!”을 외친 방문객들은 입구에 설치된 커튼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프로그램 시즌1 촬영지였던 태국의 느낌이 나도록 곳곳에는 태국어가 쓰인 표지판이 놓여 있었다. 구석에 마련된 하와이안 셔츠와 선글라스를 착용한 고등학생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빴다. 출구 앞에선 꽃무늬 셔츠를 입은 직원들이 방문객들과 게임을 진행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면 ‘졌다’, 지면 ‘이겼다’고 반대로 외치는 ‘청개구리 게임’ 코너에선 MZ세대인 아들과 함께 찾은 한 60대 여성이 “어머, 이런 게임 이겨 본 건 처음이야”라며 환호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를 비롯해 토종 OTT, 방송사가 잇달아 체험형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영화관에 작품 속 배경을 구현한 공간을 마련하거나 주인공 마네킹을 설치한 포토존을 마련하는 등 영화 홍보 차원에서 주로 했던 체험형 마케팅이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콘텐츠 주 소비층인 MZ세대를 사로잡기 위해 기업들은 갖가지 아이디어를 선보이고 있다.
○ 전철역에서 ‘오겜월드’, 검은돈 찾아 ‘방탈출 게임’
체험형 마케팅에 불을 지핀 곳은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기묘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킹덤’ ‘승리호’ ‘오징어게임’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까지 오리지널 작품들 위주로 기발한 행사를 진행했다. 넷플릭스의 체험형 마케팅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9년 6월 오리지널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3’ 공개에 앞서 서울 마포구에 마련한 팝업존이었다. 팝업존은 드라마 배경인 1985년 호킨스 마을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집 내외부의 인테리어,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한 아케이드 게임 체험 공간 등으로 꾸몄다. 이에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 팬들의 ‘덕지순례’(덕질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가는 곳) 장소가 됐고, 1주일 만에 방문자 1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9월 넷플릭스가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 차린 ‘오겜월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초대형 인형이 설치돼 있고, 땅따먹기와 공기놀이 등을 할 수 있는 체험존이 마련됐다. 넷플릭스 제공
지난해 9월 넷플릭스가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 차린 ‘오겜월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초대형 인형이 설치돼 있고, 땅따먹기와 공기놀이 등을 할 수 있는 체험존이 마련됐다. 넷플릭스 제공
가장 큰 규모의 체험형 마케팅으로 화제가 됐던 건 지난해 9월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일대에서 열린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마케팅이다. 이태원역 지하 4층에는 드라마에 등장한 게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오겜월드’를 조성했다. 오겜월드의 여러 골목놀이 중 가장 재밌었던 것을 사진과 함께 해시태그 ‘#라떼최애골목놀이’를 달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게 했는데 인스타그램에만 1000개가 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토종 OTT들도 공격적으로 체험형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신생 OTT들이 본격적으로 대작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체험형 마케팅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웨이브는 올해 초 오리지널 드라마 ‘트레이서’ 시즌2 시작에 앞서 서울 마포구에서 방탈출 체험존을 운영했다. 드라마는 국세청 조세5국 직원들이 재벌그룹의 검은돈을 쫓는 과정을 그린다. 방문자들은 조세5국 신입사원이 돼 8683억 원을 탈세한 PQ건설 양 회장의 숨겨진 돈을 찾는 미션을 해결해야 한다. 방문객들이 입장 전 입사지원서를 작성한 뒤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입장하거나, 드라마에 등장했던 소품을 그대로 방 인테리어로 활용하는 등 디테일한 설정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

티빙은 ‘유미의 세포들’ 시즌2 방영을 앞두고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초대형 이성세포 인형을 설치하고, 인증샷을 올린 사람들에게 세포 캐릭터 스티커를 나눠줬다.
○ ‘인증과 공유’ 문화 파고들어 팬덤 확보

콘텐츠 기업들이 체험형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뭘까. 그 배경엔 방송 초반 입소문이 나는 데 주요 역할을 하는 MZ세대의 ‘인증과 공유’ 놀이문화가 있다. SNS에서 ‘힙’한 것이라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라도 체험하고, SNS에 공유하는 ‘경험의 소비’는 MZ세대의 소비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즉, 방송 초반 흥행을 견인할 MZ세대를 사로잡기 위한 방편으로 체험형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게 된 것.

김지연 티빙 콘텐츠마케팅팀장은 “체험형 마케팅을 기획할 때 SNS 활용도가 높은 MZ세대가 해당 체험을 타인에게 적극 전파할 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인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며 “기존에 접한 적 없는 신선한 아이디어이거나, ‘이것을 봤다’ 혹은 ‘해냈다’고 본인의 경험을 자랑하고 싶은 콘텐츠일수록 온라인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된다”고 말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SNS상의 확산은 OTT 구독자 증가로 이어진다. OTT의 주 수입원이 월 구독료이기 때문에 콘텐츠에 대한 입소문을 내고 구독자를 유치하는 게 중요하다. OTT는 TV에서 채널을 돌리다가 재밌어 보이는 드라마를 고르던 기존 방식과는 다르게 시청하기 때문에 구독자 확보 경쟁이 훨씬 치열해진 것.

정예지 웨이브 마케팅기획팀장은 “OTT의 종류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은 관심이 가는 작품에 따라 OTT를 갈아탄다. 구독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해당 플랫폼에서만 볼 수 있는 신규 오리지널 콘텐츠를 계속 공급하면서 동시에 콘텐츠에 관심을 갖도록 오프라인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콘텐츠의 세계관에 참여하는 경험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OTT ‘팬덤’이 형성되는 효과를 목표로 한다. 콘텐츠의 콘셉트에 잘 맞아떨어지는 놀이 등을 제공하는 일종의 ‘팬 서비스’를 통해 ‘이 OTT라면 믿고 본다’는 신뢰를 심어 주는 것이다. 한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면 그 브랜드가 생산하는 상품은 무조건 신뢰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 넷플릭스 관계자는 “단순히 개별 콘텐츠의 시청률만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넷플릭스의 작품에 대한 경험 자체를 확장시켜 플랫폼 충성도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넷플릭스가 타 플랫폼에서 보기 드문 장르들을 선보이며 ‘넷플릭스스러운 콘텐츠’라는 말이 생겨났듯, 체험형 마케팅 역시 ‘넷플릭스다운 캠페인이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 과몰입하게 만드는 세계관 구현해야
사람들은 단순히 큰 규모에만 반응하지 않는다. 콘텐츠의 세계관을 실제 존재하는 물건 등으로 구현해 ‘과몰입’할 수 있을 때 흥미를 느낀다. 2020년 서울 종로구 송원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전시 ‘넷플릭스 킹덤 피로 물든 역사전’은 좀비들과의 전투에 쓰인 무기부터 피로 물든 중전의 의복, 세계에 단 하나 남은 생사초 등을 전시했다. 세자 이창이 좀비들과 어떻게 전투했는지를 그린 상세한 설명도 함께 선보였다. 전시를 관람했던 김경아 씨(31)는 “전시품 설명에서 ‘이것은 어떤 배우가 어떤 장면에서 썼던 소품’이라고 적지 않고, 드라마 속 인물이 실제 역사 속 인물이라는 콘셉트를 유지해 킹덤에서 벌어진 일이 진짜 역사인 것 같은 몰입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마케팅을 기획할 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사람들은 온·오프라인 체험이 상호 연계될 때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티빙이 지난해 12월 진행한 오리지널 드라마 ‘내과 박원장’이 대표적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등에 실제 병원 홍보물처럼 제작된 박 원장의 내과 광고판을 설치했다. 사람들이 호응한 지점은 광고판에 적힌 병원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때 ARS로 병원 안내 음성이 나오고, 병원 예약 문자까지 보내준 것. 김지연 팀장은 “전화를 걸었을 때 드라마에 출연한 차정화 배우 목소리가 나온다. 차 배우가 생각지도 못한 전화를 받아 당황해서 말을 잃는 사람들의 심리까지 반영해 멘트를 녹음했다”며 “하루에 1만 건씩 전화가 쏟아질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8월 공개되는 신하균 주연의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트콤 ‘유니콘’도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체험형 마케팅을 기획 중이다. 온라인에서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스타트업 ‘맥콤’의 홈페이지를 열어 공채를 진행하고, 지원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적성검사를 해 합격한 사람들에게는 맥콤 로고가 들어간 티셔츠 등 ‘입사 키트’를 보낼 예정이다. 오프라인에서는 경기 성남시 판교,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등 스타트업이 밀집된 장소에서 맥콤 공채 설명을 담은 전단을 뿌릴 계획이다. 조규동 쿠팡플레이 마케팅 디렉터는 “온라인 공채가 떴던 ‘이상한’ 회사의 직원들을 출근길에서 마주친다고 상상해 보라”며 “온·오프라인이 연결되는 데서 오는 예측 불가능하고 기발한 재미를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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